“너는 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꽃도 그 숱한 바람에 흔들리며 차가운 비에 젖으며 피어난다.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흔들리고 젖으며 살아갈까.

 ‘온실 속의 화초’에서 벗어나 세상에 홀로 팽개쳐져 그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을 때, 그 당혹감과 좌절감에 내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제 신문사 퇴임을 눈앞에 두니 3년 동안의 그 힘들었던 시기의 일들이 아릿한 추억으로 남는다.

 ‘친구’라는 협소한 관계 속에 갇혀서 살다가 신문사에 들어와 일하면서 만나게 된 동기, 선배, 교수, 교직원 등 새로운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고민하며 힘들어 했는지…. 지금은 다 의미 있는 경험이고 자산이라 생각되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꿈과 현실, 그 사이에서 상처도 받고 좌절도 하며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이제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노련해졌다고 생각할 때, 또 새로운 바람과 태풍은 찾아 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자책하며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시인의 <삼십세>라는 시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아직 삼십세가 되려면 멀었지만, 비단 서른 살만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큰 열정과 욕심을 갖고 달려들다 현실에 부딪쳐 쓰러졌지만 그렇다고 마냥 현실에 순응한 채로 그렇게 흘러가고 싶지 않았다.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두커니 있을 수만도 없을 때, 그럴 때가 참 많았다. 그래서 그 말이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이내 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다들 이렇구나,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하며.

 ‘이렇게 흔들리며 나도 피어나고 있는 중이겠지. 저기 어딘가 들판에서 피어나고 있는 풀꽃처럼. 나도 그렇게 흔들리며 줄기를 곧게 세우고 있는 중이겠지.’ 그 어떤 바람과 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온몸이 축 쳐질 정도로 젖는다 해도 그래도 그 안에서 성장하리라고 믿는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도 태풍도 결국 지나가게 마련이다. 언제 그렇게 휘몰아쳤냐는 듯이 또 밝은 태양이 뜨고 따스한 햇살이 반기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또 나는 나아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작고 이름 모르는 풀꽃이라 해도 다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도 그렇다. 너도, 그리고 나도 꽃이다.

 아무도 나를 알아봐주지 않아도, 세상에서 나 혼자 남겨져 초라하게 느껴질지라도 결코 굴하지 말자. 우린 모두 그 자체로서 예쁘기에, 오래보면 사랑스러운 존재이기에.

 현실에 안주할 수도, 열정만으로 치고 나아갈 수도 없을지라도 그래도 사는 게 인생이라고 했다. 먼 훗날, 나처럼 흔들리고 있을 또 다른 풀꽃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아진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나는 그 풀꽃의 아름다움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조그만 위로가 돼줄 수 있기를 바란다.

 “후배들아, 너는 꽃이다.”

황정빈 기자

“나는 지박령이다”

 ‘학보사 지박령’―. 어떤 한 곳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지박령’처럼 매일같이 학보사에 있다는 뜻으로 지인들이 내게 붙여준 제2의 이름이다.

 ‘학보사 지박령’이란 이 별명에는 학보사 일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섭섭함도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3년 동안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마워”, “사랑해”란 말보다 “학보사 때문에…”란 말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퇴임에 대한 소감을 전하기에 앞서, 학보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나를 믿고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학보사를 지원하게 된 계기는 기자로서의 꿈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당시 대학생활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학보사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고, 속상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이 곳은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러다보니 힘든 학보사 생활도 나에게 행복 그 자체가 되었고, 이러한 행복감이 좋아 잠깐의 시간이라도 나면 무조건적으로 학보사로 향하는 지박령이 되었다.

 그렇다고 진짜 지박령처럼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머무는 사람이 아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일같이 데스크에 남아 부족한 점을 찾고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비교적 어린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국장이라는 직책을 달게 되다보니, 어려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고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려 했고, 그로 인한 답답함에 짓눌려 하루하루 지쳐갔다. 이렇게 일적인 부분에 완벽을 추구하려 하다 보니 후배들에게 내가 후배였을 때 느꼈던 행복감을 주지 못한 것 같다. 국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내 자신조차 사람이 좋아서 기자생활을 했다는 본질을 잊었던 것이다.

 이때 나를 바로잡아준 것은 우리 기자들이었다. 현직기자들의 조언을 듣고 내 태도를 고쳐 나갔다. 그 뒤로 쓸쓸한 데스크에서 나와 회의책상에서 함께 고민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일에 임했다.

 즐겁게 일하는 학보사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천대 학보사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수의 급증, 많은 학우들의 500호 이벤트 참여, 어느 때보다 참여와 호응이 높았던 보도사진전을 통해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

 학보사에서 즐겁게 일한다고 기자활동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충정로에서 신문조판을 하다 막차를 놓쳐 더위와 추위 속에서 밤을 새고, 자신이 담당한 기사가 원하던 방향으로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도 느끼며, 과도한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항상 존재했다. 다만, 사람냄새가 이 모든 것을 포용한 것이다.

 학교에서 신연수역 사이 가로수 밑 담쟁이넝쿨을 찍었던 첫 사진, 정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200자짜리 기사를 쓰고 받았던 작은 칭찬을 잊지 못한다. 후배들이 맡은 직책과 책임이 달라져도 학보사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모두 모아 즐겁게 생활하길 바란다. 이 ‘학보사 지박령’이 퇴임 후에도 계속 찾아오고 싶은, 사람냄새 나는 곳이길 바란다. 또한, ‘의사는 생명을, 검사는 자유를, 기자는 명예를’이라는 우리의 구호처럼 학교기자로서의 자긍심도 잊지 말길 당부한다.

한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