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연구자 이길호씨가 쓴 우리는 디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속에서 펼쳐지는 한국 인터넷 문화를 다양한 신조어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기계처럼 사양(스펙)을 높이려는 청춘세대와, 최저임금을 더 깎아 이익추구를 도모하는 블랙기업 사이에서 발생한 잘못된 거래가 신조어로 등장한다. ‘열정페이’다. 글쓴이는 열정페이 계산법을 설명하는 다이어그램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열정과 재능과 재주가 있다면 돈을 조금만 줘도 된다는 논리이다. 그림을 잘 그리면 공짜로 초상화를 그리고, 공연을 하고 싶어 안달 났으면 공짜로 공연하라는 예시가 이해 아닌 이해를 돕고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최근 아티스트의 사회로부터 불거졌다. 페이스북 ‘패션노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당한 대우와 법을 무시한 임금에 대한 호소가 올라온다. ‘하루만 야근을 했으면 좋겠다. 30만원을 받았는데 아마 이게 월급인 것 같다’ 등 열정을 담보로 한 대가는 매섭도록 차가웠다. ‘무급’이라고 명시된 채용공고 사진은 이러한 호소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노래하는 가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잠재력을 칭찬하며 섭외해 가지만 기획사에선 교육을 명분으로 제대로 된 임금지급에 모르쇠로 일관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사고자 하는 사람도 노동법의 울타리를 벗어났고, 팔고자 하는 사람도 애초에 본인이 팔 수 있는 것을 내놓은 건지 모르겠다. 피해 입은 노동자의 절규를 듣고 있다면, 블랙기업은 법으로서 그 때를 완전히 씻어내야 한다. 기업 이미지를 생각하든, 대표자의 양심을 생각하든 인턴, 서포터즈 등 봉투 피하기식의 사람 채용은 제 살 깎아먹기다. 열정을 판다는 청년들도 숨가쁜 레이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스스로가 열정을 팔아 얻고자 한 것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지, 아니면 열정을 팔아봤다는 그 한 줄 ‘인증’이 필요한 건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열정페이’라는 이 신조어는 무시되는 노동법, 살벌한 경쟁률의 취업난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너도나도 각자의 주변과 비슷하게 살아야 안심이 되는, 보통 아닌 예외는 ‘열외’가 되어 버리는 각박한 요즘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같은 시대의 구성원으로 굉장히 불편한 마음이다.

김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