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가 전국을 덮쳤던 올 여름,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관계는 사드 배치 논란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연구한 주제를 발표하고 성과물을 나누는 교수들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위안부 문제, 동아시아의 역사 화해 등 묵직한 주제에서 유행가, 한자어 번역 등 다소 가벼운 주제까지 발표 장르는 다양하지만 국경을 뛰어넘어 동아시아를 이해하자는 취지는 같았다.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학술대회, ‘동아시아의 유행가·역사 화해’ 등 다양한 주제 다뤄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와 산둥대 한국학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의 인문학-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가 지난달 18일 본교 글로벌캠퍼스 가천관 314호에서 열렸다. 두 기관의 인연은 2005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2년 동안 지속됐고, 그동안 수차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동서 음악의 융합과 동아시아의 유행가’(박진수 가천대 교수)

  한국의 대중가요와 일본의 가요곡은 형식과 내용이 매우 비슷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본의 가요곡만을, 한국에서는 한국의 대중가요만을 연구하며 양자의 공통점과 상호 관계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양자는 뿌리가 같고 서로 교류하며 상호 영향 하에 발전해 왔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양국의 대중음악을 큰 단위로 묶어 하나로 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근대 문화의 큰 흐름은 서양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지는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 문화의 전달과 수용의 양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대중음악 분야의 번역 루트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서양 곡이 일본에 수입되는 경우, 둘째 서양 곡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수입된 경우, 셋째 서양 곡이 직접 한국에 수입된 경우, 넷째 일본 곡이 한국에 수입된 경우, 그리고 마지막은 한국 곡이 일본으로 수출된 경우다.
  이 중 일본 곡이 한국에 수입된 경우에 초점을 맞춰 보자. 한국 대중음악사가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시작돼 일본 대중음악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자주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곡이 어떻게 번역됐고 그 내용이 어떤지에 대한 면밀한 고찰은 많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일본 엔카의 원조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와 한국 트로트의 대표곡 ‘목표의 눈물’에 대한 원문 가사와 번역된 가사의 문맥과 담론의 전달 방식을 통해 언어의 심층에 녹아 있는 대중의 심정과 시대와 정서의 상관관계를 느낄 수 있다.

‘동북아 역사 화해에 대한 인식과 감정 그리고 책임’(허춘훙 산둥대 교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1년이 지났음에도 동북아시아에서는 아직도 역사 화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역사 화해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데는 세 가지 핵심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한·중·일 3국 역사 문제 중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인 ‘역사 인식’이다. 일본의 침략 정책 실시와 식민통치의 역사 인식에 대해 일본과 한·중 사이에 주요한 쟁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침략론인가 해방론인가’의 문제다. 한국과 중국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침략에 맞선 항쟁의 역사로 인식하지만, 일본은 자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영도해 대동아공영권을 세운 분투의 역사로 보고 있다. 둘째, ‘해결됐는가 해결되지 않았는가’하는 문제다. 일본 정부는 2015년 4월 7일에 발표한 〈외교백서〉에서 일본과 주변국들과의 역사 논쟁 및 법률적 배상 문제는 이미 완전히 해결된 문제라고 했지만 한국과 중국은 이러한 일본의 언행을 끊임없이 질책하면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노역자 등 민간인 배상 문제를 끝나지 않은 문제라 주장한다. 셋째, ‘역사 교과서’에 관한 문제다. 일본은 2015년 4월 6일 자국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표기했고, 난징대학살에 대한 표현을 고쳐 한·중·일 마찰을 촉발시켰다.
  두 번째 문제는 3국이 역사 문제에 있어 ‘공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중 양국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통치 과정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굴욕과 고통을 받았음에도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에 분노한다.
  마지막 문제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역사적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다. 한국 동북아역사재단의 도시환 교수는 아베 담화가 가해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결여돼 있고 침략과 식민통치의 주체에 대해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이 없고, ‘반성’의 주체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 인터넷 사이트 닛폰닷컴의 주편 가와시마 신은 “일본이 배상, 평화교류 사업 등을 통해 화해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중·일 3국의 역사 화해는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역사 인식에 대해서 일본은 역사 교과서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자신들의 무고함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자발적인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한다. 둘째, 역사 감정의 문제에 있어 일본은 국내에서 책임 있는 역사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며 역사 인식 문제가 다시는 한·중·일 3국 국민 간 감정의 응어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역사 책임의 문제에 있어 한·중·일 3국은 아시아 여성기금 등 교류와 소통을 강화하고 동일하게 규정해 평가해야 한다.

중국 현대 문학에 등장한 종군 위안부, 그 이면을 찾아서
‘한국인 위안부 관련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 대한 고찰’(뉴린제·한샤오 산둥대 교수)
 

  위안부 문제는 동아시아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안이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최근에 개봉된 한국영화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소녀의 수난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많은 나라에서 주목받아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켰다. 당시 일본군은 전쟁터에 영화 속 주인공 영희와 같은 한국 여성과 많은 동아시아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으며 그들로 하여금 피와 눈물의 세월을 보내게 했다.
  그동안 중국 현대문학 속의 한국인 위안부 제재 작품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발표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위안부를 제재로 한 중국 현대문학 작품은 적어도 8편이 있다. 위안부 관련 작품들의 발표 기간은 항일전쟁(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전쟁이 끝난 바로 이후의 두 시기에 집중돼 있다. 위안부가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 등장하게 된 것은 항일전쟁 후기 일본 군인이 포로가 돼 그들과 함께 있는 위안부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위안부 관련 작품들의 저자는 소설가, 시인, 종군기자,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 일반인 등으로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전시에 창작된 한국인 위안부 제재 작품들과 달리 전쟁이 끝난 후 창작된 작품의 저자들은 거의 문단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전시 작품에서 묘사된 위안부들의 활동 지역이 다양한 데 비해 전쟁 후 창작된 작품들에서는 오직 상하이를 무대로 하고 있다. 또 전후의 한국인 위안부 제재 작품은 작가 개인의 창작집이 아닌 잡지에 발표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인 위안부 제재 작품의 장르는 소설, 고체시, 보고문학, 기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에서 보고문학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당시 중국으로 끌려온 한국인 위안부의 실정을 밝히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현재 진행 중인 문제다. 위안부 문제는 또한 단순히 한·중·일  3국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외교적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권리, 존엄과 관련된 인간적이고 국제적인 문제다. 새로 발굴된 한국인 위안부를 제재로 한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당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수많은 역사적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 이들 작품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문학작품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당시 위안부의 실정을 살펴보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한·중·일 3국의 공동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과거 역사의 진실을 밝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공유하고 한·중·일 3국을 넘어 동아시아 화해의 초석을 쌓기 위해서 앞으로 이들 작품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지속돼야 한다.

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박진수 교수 인터뷰
“학술 교류는 국가 간의 굴곡진 관계를 완만하게 할 수 있어”

아시아문화연구소를 소개하면.
  아시아문화연구소는 크게 분류해 세 가지 일을 한다. 첫 번째는 외국 대학과 교류하며 학술대회를 연다. 본교에서 외국 대학과 학술 교류를 할 때마다 외국 대학의 교수들이 발전하는 본교의 모습을 피부로 느끼고 본교의 발전상을 널리 알리기도 한다.
두 번째는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아시아문화연구〉라는 학술지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는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되는 학술지는 주로 학회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이는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위상을 보여주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꾸준히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와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해준다. 2013년에는 한국가스공사의 후원을 받아 ‘알타이 언어문화 연구’라는 주제로 10년간 지속될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사드 배치 등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문제로 교류가 어려웠을 수도 있었는데 성공적으로 학술대회를 마무리했다. 그 비결은.
  산둥대 한국학대학의 뉴린제 교수도 그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산둥대에서도 올해 예정된 한국 대학과의 교류가 모두 취소됐다고 한다.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순수한 일이다. 다시 말해 학문을 연구하고 학술 교류를 통해 연구한 성과물들을 나누는 이 일에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개입할 수 없다. 나아가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더 학술 교류, 민간 교류, 문화 교류 등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 혹은 한국과 일본 간의 정치적 관계는 항상 굴곡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런 굴곡을 완만하게 해준 것이 다름 아닌 민간의 교류, 개인과 개인의 신뢰임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