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가장 고귀한 신분을 지녔지만 가장 낮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비참한 생애를 그린 실화 소설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덕혜옹주의 일생을 담은 책은 일본 번역서뿐이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덕분인지 그녀의 이야기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모두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덕혜옹주가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달 3일 실화에 허구가 가미된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했다.
  소설 ‘덕혜옹주’는 총 4부로 나뉘어 옹주의 일생을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1부 ‘그곳에 이름 없는 황녀가 살고 있었다’는 독살 의혹이 있는 고종의 죽음으로 천진난만한 옹주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도 독살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항상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물을 마신다. 또한 망국의 옹주로 태어나 한복과 한글이 아닌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일본어를 배운다. 당시 그녀는 열한 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 순경에 끌려갈 뻔한 여자아이 복순이를 구한다. 2년 뒤 옹주는 대한제국의 장관인 한창수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가게 된다.
  2부 ‘한겨울에 피는 꽃들’에서는 순종과 옹주의 어미인 양귀인의 죽음과 소 다케유키와의 결혼을 다룬다. 일본으로 끌려온 그녀에게 오라버니인 의친왕은 “네가 어디에 있든 대한제국의 황녀라는 것을 잊지 말라”며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학교에서 옹주는 심한 따돌림을 당하지만 아무 표정 없이 반항도 하지 않는다. 마음 둘 곳 없는 일본에서 그녀는 순종의 죽음과 양귀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그때 옹주의 도일을 주도한 한창수는 일본 귀족과의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3부 ‘말하라, 이 여자는 누구인가’는 덕혜옹주의 결혼생활과 아이 정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결혼 후 옹주는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이를 낳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이가 조선인인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딸 정혜가 학교를 다닐 때 일본 학생들이 조센징이라 놀려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정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인 덕혜에게 온갖 화를 내며 자신을 정혜라 부르지 말라고 소리친다. 한창수가 시녀인 복순이를 빼앗아 가고 조국에서도 찾지 않으며 딸과 남편은 그녀를 모른 척해 그녀는 정말 혼자가 된다. 결국 옹주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다.
  마지막 4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에서는 정신병원에 있는 옹주를 조선으로 데려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조선으로 돌아온 옹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왕가 자손들의 출국을 금한다. 이에 고종 시절 덕혜옹주의 지아비가 될 뻔했던 김장한과 그의 형인 김을한이 옹주의 귀국을 도모한다. 김을한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옹주의 귀환을 요청했으며,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냐는 말에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답한다. 그렇게 덕혜옹주는 37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영화 ‘덕혜옹주’는 사실 그대로의 내용이 아니며 가상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덕혜옹주가 항상 물병을 들고 다니며 정신병원에 갇혀 오랫동안 조선에 돌아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극적인 옹주의 모습이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 미화됐으며 망명을 시도한 것은 모두 허구다. 덕혜옹주의 일생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영화보다 책을 추천한다. 하지만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기폭제가 존재한다. 배우 손예진은 미칠 수밖에 없었던 옹주의 현실을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해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지만 모두가 외면했던 그 여인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