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과 역사. 대학로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공존하는 곳이다. 한쪽에는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서 있고, 다른 쪽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줄을 잇는 거리에 60년 전의 다방이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대학로는 예술가들의 공연과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의 향기가 묻어난다. 전통과 예술이 공존하는 대학로로 떠나보자.

▲ 강애란 작가의 전시전 'A Room of Her Own'이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다.     ▲ 서울연극센터는 공연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7년에 개관했다.     ▲ 제9회 서울메트로 전국미술대전의 수상작들이 혜화역 전시관에 전시됐다.

평범한 동네에서 서울의 대표 관광지로, 이화벽화마을
  서울 종로구의 이화벽화마을 도보 여행은 이화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주민센터 안에 비치된 ‘이화동 벽화마을 착한여행 지도’에는 대표적인 벽화의 위치가 나와 있어 관광객들이 이화벽화마을을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화장1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사저였던 이화장이 있다. 굳게 닫힌 이화장 정문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 담 옆으로 돌계단이 있다. 끝없을 것 같은 계단들을 올려다보면 까마득하지만 계단 양편에 그려진 그림들과 조성된 화단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힘든 것도 잊게 된다.
  이화장1나길을 지나 20여m를 걸어가면 율곡로19길이 나타난다. 이 길에는 관광객을 위한 낙서장이 마련돼 있다. 3분의 1 정도 내려가면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칠판 같이 생긴 낙서 전용 벽면을 볼 수 있다. 낙서장을 뒤로하고 내려가면 30여 개 계단에 그려진 작품에서 일반 벽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감과 질감을 전달받을 수 있다. 율곡로19길은 ‘꽃계단’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꽃계단’을 다 내려오면 이화벽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천사 날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에 그려진 한 쌍의 날개 가운데 서면 누구나 천사가 되는 구도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천사가 된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관광객들로 ‘천사 날개’ 주변은 늘 북적댄다.
  디지털 마케팅 자회사 펑타이에 따르면, 이화벽화마을은 올해 중국의 국경절 기간 동안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관광명소 5위에 올랐다.

효심으로 태어난 창경궁…역사적 아픔도 많이 담아

  창경궁은 1483년, 조선 성종 14년에 창건됐다.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이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 경복궁을 법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했다. 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거처하는 걸 더 좋아했는데 창덕궁에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이때 성종은 왕실 웃어른인 정희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창경궁을 마련했다.
  창경궁은 다른 궁보다 역사적 아픔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년)에 재건됐다. 하지만 이후 몇 차례 더 화재가 났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옥천교 앞 명정문을 지나면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이 나온다. 궁궐 정전 중 가장 오래된 명정전에서는 즉위식, 과거시험, 궁중 연회 등이 열렸다. 명정전 내부에는 왕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명정전 주위에는 왕이 일상 업무를 보았던 문정전, 독서하거나 국사를 논하던 숭문당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정전은 1762년 조선 22대 왕 정조의 친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전각 옆에 돌난간을 두른 네모난 연지와 둥근 샘이 있고 뒤뜰에는 꽃계단이 마련돼 있다. 희빈 장씨가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숙종비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가 사약을 받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미생’ 예술가들의 아지트, 마로니에 공원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 캠퍼스로 옮긴 뒤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됐다. 이 공원은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 안에 있던 마로니에 나무 세 그루 덕분에 ‘마로니에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공원의 오른편에 예스러운 풍치가 묻어나는 벽돌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931년 10월 준공돼 경성제국대학의 본관으로 사용되다 1945년 해방 이후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서울대가 관악 캠퍼스로 옮기면서 문화예술진흥원의 청사로 사용됐고 현재는 ‘예술가의 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83년부터 2008년까지 26년 동안 ‘마로니에 전국여성 백일장’을 열기도 했다. 현재 공원 내 야외무대는 주말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마로니에공원에는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또 아마추어 가수들의 공연과 춤을 연습하는 젊은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무료로 개방하는 야외무대에는 대학생과 예술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가 수시로 열린다. 이처럼 마로니에공원은 젊음과 문화의 상징인 대학로라는 공간의 특성과 상통하는 문화적 취향을 가진 곳이다.
  공원 안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은 공연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 공간을 확보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수 예술단체에 발표공간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1981년 4월에 개관했다.
  아르코예술극장 옆에 있는 아르코미술관은 1974년에 운영을 개시해 1979년 5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산하 전시지원시설인 미술회관으로 개관했다. 시각예술 전문 아카이브실인 아르코아카이브와 실험적 대안공간인 인사미술공간 등으로 이뤄진 이 미술관은 한국의 예술작품과 이에 관한 담론을 생산한다.

‘대학로 터줏대감’ 학림다방의 60년 이야기
  학림다방은 대학로의 터줏대감이자 대선배다. ‘대학로’라는 거리 이름이 생긴 1985년 이전부터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도로 대신 개천과 다리가 있었고, 막걸리집이나 중국집이 있던 시절에 들어섰다. 다방 이름은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의 축제 이름인 ‘학림제’에서 유래했다. 주로 대학생들이 즐겨 찾아 ‘서울대 문리대 제25 강의실’로 불리기도 했다.
  넓은 공간과 화사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커피숍들이 만연해진 요즘, 학림다방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평범하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평범함’이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방 안에는 수십 년은 된 것 같은 소파와 테이블 10여 개가 있고 계산대 뒤편 책장에는 클래식 LP 레코드판 1,500여 장이 채워져 있다.
  학림다방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오래된 다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60년대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과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각계 인사 800여 명이 남긴 학림의 방명록에 이런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아픔도 다방 역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1981년 학생운동조직 전국민주학생연맹을 간첩으로 몰아 53일간 불법감금과 고문이 가해졌던 ‘학림사건’도 피해 학생들이 학림다방에서 모여 그 이름을 가져왔다.
  다방 입구에 새겨진 황동일의 시 ‘학림:SINCE 1956’은 100년을 꿈꾸는 다방 ‘학림’의 의미를 말해준다.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쯤을 곁들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