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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3년을 돌아보며
서예빈 국장  |  gc599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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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30  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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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항상 글쓰기를 좋아했고 종이신문도 꾸준히 읽어왔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어느 학과로 진학하든 대학신문사에 들어가 내 이름을 걸고 꾸준히 글을 쓸 것을 다짐했다. 자필 지원서를 떨리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편집국장이 돼 마지막 글을 쓰는 순간이 다가왔다.
 분명 힘든 순간도 많았는데 돌아보니 온통 추억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년 학보사 보도사진전이다. 하늘의 구름을 주제로 푸른 천에 솜 3kg를 붙이며 우리도 온통 솜투성이가 됐었다. 학보사가 아니라면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봤겠는가. 선배들이 없는 첫 회의를 이끌어갈 때도 잊지 못한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쳐오며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기자들의 모습에 내가 맡은 자리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고뭉치 수습기자부터 한 조직을 책임지는 국장이 되기까지 나에게 학보사 생활은 줄곧 소설책 같았다. 학보사에서의 경험은 늘 새로웠고 미지의 영역이었다. 또한 온갖 위기를 겪어도 절정을 넘어서면 종국에는 결말이 있고, 그때마다 나는 성장했다. 학보사가 아니었으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들이 이젠 나의 가장 큰 무기가 됐다.
  결국 내가 3년간 학보사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는 방법만이 아니다. 가끔 번아웃이 찾아올 때도 지금 그만두면 여태까지 쌓아온 것이 모두 무너진다는 생각이 늘 제동을 걸었다. 학업과 기자생활을 병행하느라 남들은 편히 쉴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가고, 밤늦게까지 기사를 몇 번이고 수정했던 기억들. 한 순간에 모두 무너뜨리기는 너무 아쉬웠다. 결국 무수한 고비를 악착같이 넘으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몇 번이고 일어나면 되겠구나. 결국 나는 학보사를 통해 포기하지 않고 한계를 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내가 우리 학보사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메디컬캠퍼스의 특성상 학보사의 일이 모두 전공과 전혀 관련 없음에도 각자의 신념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함께 데스크진을 이끌어간 동기들, 나연, 채영, 여정. 우리는 꼬박 3년을 동고동락 하며 진정한 의미의 협동을 알게 됐다. 또한 임기를 마치고도 먼저 연락해 신경써주는 선배들, 어느덧 믿음직스럽게 성장한 후배들에게도 감사하다. 거대한 은하수조차 자세히 보면 각각의 별이 제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학보사도 각자 자신의 직책을 빛내주는 기자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업적들을 수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학보사 생활은 해피엔딩으로 끝이난다. 앞으로도 후배 기자들을 통해 학보사의 멋진 이야기가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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