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로 느낀다는 말이 있다. 단순한 ‘이해’가 아니다. 깊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공부다 뭐다하는 바쁜 일상에 ‘감각의 여유’ 따위는 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4월은 이런 우리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녀석이 아닐까? 죽은 것만 같았던 우리 오감(五感)이 꿈틀대는 계절. 4월은 그런 계절이다. 소매 자락 속 살갗을 스쳐가는 따스한 바람, 도처에는 향기로운 꽃향기, 조용하던 캠퍼스 가득 찬 웃음소리에 놀라 눈을 뜨면 터져 나오는 말. “이제 봄이구나!” 마치 움트는 새싹, 퐁~ 하고 터트려지는 꽃망울처럼 말이다.

비록 짧은 순간일지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것이 봄이 주는 싱그러움이라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만 같다.

꼭!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학교 학우 202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지금 봄을 타고 있습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학우 167명(83%)이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학우들은 봄에 어떤 변화를 느끼는 것일까? 학우들이 꼽은 첫째 변화는 단연 “연애하고 싶어진다(32%)”였다. 남 학우들은 이에 36%의 지지율을 보였고, 여 학우들는 28%의 지지율을 보였다.

화창한 봄날,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인가보다. 심지어 사랑이 없기 때문에 슬프다고 말하기도 하니까.

설문에 응한 많은 학우들의 “where is my girl”, “솔로에겐 괴로운 봄!”, “외로워요”, “봄인데... 남친 급구...ㅠ.ㅠ” 등의 서럽다는 반응이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어느 때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기에 봄은 ‘애인 만들기 좋은 계절’이라고 한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닌 까닭이다. 의학계에서는 “햇빛의 양이 많아지는 봄에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증가돼 기분과 의욕이 상승된다”고 말한다.

세로토닌이 바로 봄처녀, 봄바람난 남자를 만들어내는 범인이라는 것. 그러나 범인이라고 해서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특한 청년, 숙녀들이라면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지금 말하는 것이 “세로토닌을 ‘큐피트의 화살’로 이용하라”는 것임을.

나른~한 오후 “공부 안 돼요”

설문에 응한 한 학우는 “날씨가 좋아져서, 실내에만 있던 생활들이 확 바뀐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이 학우 뿐만이 아니다. 설문에 응답한 학우 중 51%가 ‘봄을 타고 있는 이유’로 “날씨가 화창하기 때문이다”를 꼽았다.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점에서 ‘봄날의 햇살’은 우리에게 축복과도 같다. 그러나 그 햇살이 너무 달콤했던 까닭인지 “집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인 날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응답자 중 11%. 10명 중 1명 꼴로 “봄에는 현실도피 하고 싶다”고, 27%의 학생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더욱이 202명 중 136명(67%)은 “학업에 열중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들뜬 친구들 때문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38%)”, “집중력 부족으로 학업열중하기 어렵다(35%)”, “공부 말고도 할 것 많아지는 계절이니까(23%)”가 그 이유다.

어쩌면 우리의 따스한 봄날이 ‘중간고사 시험기간’과 같은 시기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화창한 봄날, ‘시험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나른~한 오후, 진달래 동산에서 벚꽃구경을 하던 학우들은 말한다.

“취업하자!”, “봄방학 주세요~”, “놀러 다니고 싶지만, 곧 있을 중간고사의 압박과 졸업의 부담감!”, “진동이 날 부른다!” 등. 벚꽃에 심취한 줄로만 알았는데, 할 걱정은 다 하고 있다. “놀러왔으면 걱정 떨치고 일단 놀아라”라고 말 하고 싶지만, 누군들 그 마음 모를까.

봄, 사색에 빠져드는 오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오후. 꽃밭의 나무 한 그루 옆에 기대어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이 말. “봄이여, 왜 그대는 날 이토록 슬프게 하는가!” 설문에 응답한 한 학우의 애환 섞인 목소리다. 성명을 기재할 필요 없는 설문지에 살포시 이름 석자를 그려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색의 계절이 따로 있겠느냐 만은, ‘봄의 사색’과 ‘겨울의 사색’은 종종 다른 의미로 와 닿곤 한다. 계절의 첫 번째는 봄, 마지막은 겨울이라고 여겨지는 까닭에서일까? ‘겨울의 눈’은 그간의 것들이 깨끗이 ‘정화’됨을, 녹아내린 눈 위에 움튼 ‘봄의 새싹’은 ‘새로운 시작’을 떠올리게 한다.
‘봄에 관한 짧은 소견’을 묻자 학우들은 봄에 색다른 의미를 곁들인 답변을 했다.

“화창하지만 가을만큼이나 고독한 계절”, “봄의 화창함, 나와 다른 그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는 다소 슬픈 사색은 물론. “즐겨라! 인생의 봄은 짧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봄은 아름다운 계절”, “화창한 날씨, 책 읽고 싶어지는 오후다”라는 희망을 읊기도 했다.

  기 다 림
                                                                        -김삼주(국어국문학과)교수

저 눈부신 오월의 공기 같은
기다림은 아름답다
라일락 향기가 되어
문간을 넘어서는
투명한 기다림은 아름답다
마냥, 기약도 없이 그저
네 이마를 찾아 떠도는
공백(空白)의 바람
설령 그것이 네게 닿기도 전
꽃비 속에 스러진다 할지라도
라일락 향기가 되어
길을 더듬는
기다림의
이 투명한 비어 있음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