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의 은밀한 과거

영화시장에는 하루에도 몇 십 편의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해가 거듭할수록 좋아지는 기술에 의해 양질의 영화들이 태어나고 있다. 첨단 장비며 막대한 자본들은 좋은 영화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이다. 과거와 현재의 기술차이는 끝없는 놀라움을 빚어낸다. ‘놀라움’으로 표현될 수 있는 우리나라 영화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에서 1925년까지 조선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동대문 전차차고, 원각사 등에서 프랑스 단평영화가 주로 상영됐다. 1910년 최초로 영화상설관이 문을 열었고 본격적인 영화 관람의 시대가 시작됐다.

최초의 무성(無聲)영화는 1924년에 나온 ‘장화홍련전’이다. 이전에 나온 영화들은 자본과 연출자 및 기술이 오롯한 조선의 것과 조선인의 손이 아니었다.

이후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이 나왔다. 이 영화는 현재 민족영화의 기원이자 조선영화의 미학을 확립한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1935년엔 조선 최초이자 조선인 자체개발의 발성(發聲)영화인 ‘춘향전’이 나왔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걸음마를 시작했던 조선영화는 완전한 국가 관리체제 안에 들어갔다.

 우리 민족은 일제식민지에서 민족영화를 재건하려는 노력을 시도했지만, 해방 후 터진 6.25전쟁으로 영화계는 또 한 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러던 중 1950년대 들어 한국영화계에 성장기가 찾아왔다.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정부는 국산영화 입장료의 면세를 택했고, 대중의 오락이 무대공연에서 영화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영화제작 시스템은 다시 안정을 찾아갔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 영화사상 가장 큰 규모의 영화사인 ‘신 필름’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 영화제작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와 완성된 필름의 단계에서 두 차례 엄격한 국가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다.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는 유사 이래 정치권력과 불화를 빚었다. 문화의 중심이 20대로 옮겨가면서 대중문화의 전반에 걸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 물결은 유신체제와 충돌해 아직 자유롭게 펼쳐지지 못하고 있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컬러TV와 스포츠의 등장은 한국영화의 침체를 가속시켰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한국영화계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93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한국영화상 최초로 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씨받이’, ‘춘향뎐’, ‘취화선’ 등이 해외 영화제로 진출하면서 비로소 한국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발전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헐리우드 영화가 출현했다. 한국영화 시장은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으나 영화의 중심지인 충무로는 프로듀서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또 외부 자본이 들어오자 제작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그 후 영화관객 1천만 시대가 도래 했다. 2003년 ‘실미도’가 최초로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잇따라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도 관객 1천만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영화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2004년 50%를 돌파해서 2006년 64%에 이르렀다.

한국 영화시장은 오랜기간 발전을 거듭하며 이제는 해외영화 시장이 부럽지 않은 우리영화 시장을 갖춰갔다.
요즘에 와서는 디지털영화가 주를 이루어 성장하고 있는 반면, 아날로그 시절의 향수를 그리는 사람들도 남아있다.

 아날로그 시절을 느낄 수 있는 단관극장은 우리나라에 몇 군데 남아 있지 않다. 서대문에 위치한 단관극장‘드림시네마’를 찾은 이정숙(43)씨는 그 시절을 느끼고 싶어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우리들에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그곳을 지금 감상해보자.

2. 내 마음의 80년대

서대문역 8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큰 간판이 눈에 띈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직접그린 화공간판이다. 이곳에는 생소한 것이 또 있다. 다른 영화관에선 찾아볼 수도 없는 홍콩영화 ‘영웅본색(1986)’이 상영 중이다. 드림시네마극장의 나이는 벌써 46년. 세월의 흐름이 이곳만큼은 비켜간 것 같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으로 입구 앞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영화상영시간을 기다리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곳엔 옛 영화포스터들로 가득했다. 또한 영화‘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의 트레이드마크인 성냥과 바바리코트가 전시돼 있었다.

관객이 6명밖에 없었던 상영관은‘지지직…지지직…’잡음을 섞으며 영화를 상영했다. 영상은 먼지가 낀 듯 깨끗하지 않았다. 멀티플랙스 영화관이었다면 화가 났을 만도한 상황이지만 화가 나기는커녕 아날로그의 매력에 푹 빠져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영화가 상영될수록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장국영의 모습과 세계적인 스타 주윤발의 앳되고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틈만 나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 하다. 그 당시 장국영이 불러 더 화제가 됐던 OST ‘당년정’이다.‘영웅이 죽는 것은 오직 의리 때문이고 그것만이 의로운 죽음이라 말하고 싶네…’라는 가사가 울려 퍼진다. TV에서 자료화면으로만 봤던 주윤발이 쌍권총으로 적을 물리친 뒤 성냥을 문다.

영화에 한 참 집중하던 중 갑자기 화면이 멈췄다. 드림시네마에서는 영화 상영을 영사기로 돌리는 방법을 쓰고 있어 필름을 갈 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있는 지금에는 볼 수 없는 신기한 풍경이다.

영화 관람을 마친 이 씨는 “옛날에 봤던 그대로의 감동이 전해졌고, 영화 속 커다란 휴대폰을 보며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며 “20여년 전 옛 추억과 정서를 회상할 수 있는 진귀한 기회였다”고 감상 소감을 전했다.

이 영화의 개봉은 86년도였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여서 인지 그 당시의 영화관의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얘길 들으니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직접 다녀온 듯 한 경험 있었다.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학우들에게 이곳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