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여행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며 동경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생활로부터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학우들이 이렇게 여행의 의미를 느껴보기엔 너무도 학교 안에 갇혀있는 듯하다. 집과 학교, 견문의 영역이 그리 넓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여행의 틈새 미학을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익숙한 환경과 풍경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모험해 보는 ‘혼자여행’을 꾸며봤다. 여행장소는 학우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가깝고 경비가 적게 들며, 당일여행이 가능한 바다가 있는 곳으로 정했다. 호기심 반, 용기 반으로 ‘인천 영종도’ 여행을 출발해 본다. 

전철을 타고 가는 중국

여행의 시작은 ‘귓동냥’부터이다. 요즘에는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원하는 목적지에 가는 방법과 관광지 등이 모두 망라되니, 여행을 떠나기 참 편리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기차여행을 꿈꾸는 학우라면 조금은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인천은 지하철 1호선이 연결돼 있어 지갑 속 교통카드 한 장만으로 여행이 가능하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한두 시간 남짓, 인천은 멀지만 가까이 있다. 오래된 기차역을 연상시키는 인천역을 빠져나오면 붉은기 일색인 ‘차이나타운’이 보인다. 1884년,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우리나라 역사의 뒤안길에서 청국 영사관과 청국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골목이다. 청국인집단거류지로 설정됐던 그곳은 현재 우리나라 유일의 차이나타운이 됐다.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패루는 비슷한 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인 坊(방)의 입구에 세웠던 일종의 중국식 전통대문이다. 이 문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붉은간판에 황금색 글씨가 적힌 간판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뭐든지 붉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세이다.

 벽에는 중국의 역사와 경극이 그려졌고, 어느 건물의 담벼락에는 황금빛 용이 내려앉아 여행자를 제압한다.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외관에 반했더라도 자장면을 놓칠 순 없다. ‘연경’이라는 중국집에 들러 ‘삼선자장면’을 주문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차이나타운 자장면을 앞에 두고 길다란 중국식 젓가락을 힘들게 손에 쥐고 있는데, 느닷없는 중국어 홍수에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말로 주문을 받았던 종업원을 포함해 식당 안 종업원들 모두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모두 우리말과 중국어를 섞어서 하는 화교인들이다. 평소에 자주 먹던 자장면이지만 차이나타운이라는 작은 중국에서, 화교인들 사이에서 먹는 자장면의 느낌은 색달랐다.

이어, 이곳 작은중국을 빠져나가 자유공원으로 가기 위해 ‘층층2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고 긴 계단을 올라야 했다. 차이나타운의 붉은색과 대조되는 푸른색 제3패루가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헤맸던 여행자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은 짙은 파랑색이 인상적이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긴 계단의 끝에는 개항기 조선의 흔적이 여러 곳에 묻어있다. 만국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자유공 원은 189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여기에는 인천의 다국적 문화를 상징하듯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장미꽃 화원이 있다

. 마치 동화 속 어딘가에 나올 것 같은 흰색 아치형 조형물과 분수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를 내려다보는 동상은 맥아더장군의 동상이다.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그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고 한다. 그 옆에는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상징하는 한미수교기념탑이 있다.

화원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더욱 더 손때 묻은 문화유산이 많이 보인다. 무지개를 뜻하는 홍예문은 그 오랜 세월을 꿋꿋히 이겨내며 지금까지도 사람과 차를 받아주고, 내보내고 있었다. 홍예문에 엉키고 설킨 담쟁이 넝쿨들이 백 점짜리 자연식 디자인을 이루고 있었다.

운 좋게 만난 1883년 ‘일본 제일국립은행 부산지점 인천 출장소’ 르네상스양식 건물은 석조로 지어진 건물 위에 돔을 올려 이 곳 오래된 골목을 더욱 신비롭게 꾸며주고 있었다. 이어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해 개원한 ‘인천우체국’까지. 온통 오래된 것들과 외국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곳 인천을 돌아봄은 현재까지 살아있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아 신비롭다.

인천과 서해바다를 손에 잡다

월미도는 일본강점기 때 관광지로 개발됐다. 그 역사의 여파 때문인가, 월미도에 있는 월미산은 ‘폭격을 맞아 낮아진 산’이라는 오명을 가진 해발 100미터짜리 산이다. 덕분에 산을 오르내리고 충분히 감상을 한다 해도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월미산은 반세기 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던 탓에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돼 있다. 산새소리에 취해 적막하고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어느덧 월미산전망대에 다다르게 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인천부두는 고요히 바쁘다. 배에 실려 조용히 수출을 기다리는 수 백대의 자동차들과, 푸른 바다 멀리 던져지는 공장의 뿌연 연기도 보였다.

이어 월미산에서 남쪽 부두쪽으로 내려오면 한국전통정원이 나온다. 우리나라 농촌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 것 같은 논과 허수아비, 억새밭, 초가가 서있었다. 찾아오는 이가 적은 이 곳 초가가 어쩐지 외로워보여 맷돌도 돌려보고, 나무지게도 지어보고, 우물에서 물도 길어봤다.

갈매기를 벗삼아 을왕리로

이제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바다로 나갔다. 월미도의 명물, 유람선선착장 앞에는 전국에서 가장 아찔하다는 월미도 바이킹이 수직을 향해 흔들거리고 있었다.

방파제를 지나 유람선에 올랐다. 파도와 바다가 훨씬 가까워졌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한쪽 날개가 사람 팔뚝만한 갈매기들이 배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우깡을 던져줬고, 새우깡이 어디로 날아가든 갈매기들이 쫓아가 탁탁 과자를 물어갔다. 최고의 비행꾼들이다.

그러기를 10분도 채 안 되어, 배는 영종도에 당도했다. 이어 버스를 타고 30여분 들어가자 여행의 최종 종착지인 을왕리 해수욕장이 펼쳐졌다. 오후 4시경 물이 빠지자, 부드럽다기 보단 단단한 모래가 초승달처럼 반원을 이루며 백사장을 드러냈다. 평평하게 펼쳐진 오묘한 색의 백사장은 제법 쌀쌀해진 날씨와 유난히 어울렸다.

여름 성수기가 지난 을왕리 해수욕장은 혼자여행에 최적의 장소이다. 소수의 다른 여행자들을 제외하고는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방해하는 여타의 소음이 없다. 그저 가볍게 왔다가, 바다를 충분히 감상하고 돌아가기에 그만이다.

오후 7시쯤이면 서쪽으로 해가 내려앉는다. 월미도로 돌아오는 유람선에서는 월미도 끝자락의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바다에 몸을 기댄 노을이 인상 깊었다.

여행에 기술은 필요 없다. 처음 계획대로 잘 지켜지지 않는 여행이 돼버리거나, 먼 길로 돌아돌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지라도 서투른 여행의 여정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다. 서툰 여행길일수록 계획하고, 고민하고, 경험하며 내가 커질 수 있음이다.

그러나 여행의 이유만은 명확해야 한다. 평소 관심주지 못했던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불안한 미래를 새롭게 계획하거나 다짐하기 위해 혹은 학교생활이나 인간관계 등을 잠시 놓아보기 위한 여행이어도 좋다. 스스로 얻어가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한다면 더 없이 완벽한 여행계획의 틀이 완성될 것이다.
 글·서가영 기자 rkdud0217@
 사진·조국인 기자 paqwe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