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

이 말 하나만으로도 ‘수제’란 것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듯 하다.
이런 수제품에 그 이상의 값어치를 더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장애인들을 위한 수제구두를 만드는 ‘미래재활제화연구소’의 3인방 박정일(61), 손기선(65), 염규근(66)씨다.

이들은 각자 신발모양을 잡는 일, 신발 겉면을 제작하는 일, 신발을 완성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하나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신발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신발을 얻을 수도, 틀어졌던 자세가 교정되기도 한다.

수제구두를 만드는 일만도 힘들 텐데 특수한 발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도 해야하니, 이들은 몇 배나 더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
누군가의 ‘희망’을 만드느라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그들의 ‘행복하고도 바쁜’ 하루를 방문해 보자.

‘살기 위해서’ 지금은 그저 ‘누군가를 위해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로 하얀 입김이 나오는 추운 아침.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그들의 일상은 시작 된다.
기자가 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는 손에 인터뷰하기가 죄송할 정도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어서 물어봐~”

그렇게 할아버지와 손녀가 이야기하듯 인터뷰가 시작됐다.
박정일씨, 그는 6·25전쟁 직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잠을 잘 곳도 없었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돈이 모자라 공부할 형편이 아니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땐 그게 그렇게 서럽더라고”
서러움을 뒤로한 체 무작정 돈 벌 곳을 찾다가 시작한 일은 구두 만드는 일. 당시엔 구두 만드는 일이 수입도 좋아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시작했다.

그러던 중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것이 기계화되기 시작했고, 수제화의 입지가 차츰차츰 좁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이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구두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던 4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의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3인방이 되었는데, 두 분의 장인이 돌아가신 까닭이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는 염규근씨. 언제나 그렇듯 장애인수제구두를 만드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어려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지”

평생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곳을 통해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가장기억에 남았던 일을 묻자니, 평생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신발을 찾으러 온 날 말없이 신발을 품에 꼭 안았던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고.

가끔 이곳에서 신발을 해갔던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전화가 오는 때면 이 일에 더욱 애착을 갖는다고 한다.
“아, 내가 좋은 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지

취재도중에도 신발을 맞추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 이 계속 됐다. 세분 모두 연세가 지긋 하신데도 불구하고 휴일은 ‘일요일’뿐이란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은 아닐까 말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퇴직을 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밥 먹고 뒹굴뒹굴 거리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좋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너그러워지는 자신을 볼 수 있다고. 일을 쉬면 마음이 불편한데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손님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구두장이의 모습이었다.
“거의 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야. 멀리서 오는데 하루 쉬었다가 손님들 헛수고 하면 안 되잖아. 몸도 불편한데 그럴 수야 없지”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염규근씨. 고된 작업으로 인한 땀방울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편 손기선씨 본인도 몇 해 전 척추 수술을 해 다리가 불편하다.
“내 몸이 이러니까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장애인들 마음이 더 잘 이해가 돼지”

정성을 쏟아 하루 두켤레 제작

검은 천막으로 둘러싸인 허름한 구두방이지만, 이들의 연구실은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탄 곳이다.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특수 신발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이곳에서 완성할 수 있는 신발은 하루 두 켤레 정도 뿐이기에 한때는 손님들이 물건을 받기위해 6개월씩 기다려야 했던 적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명 짧은 사람은 신어보지도 못하고 죽겠다는 말도 있었지”
수제화를 만드는 곳, 그것도 장애인들을 위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사람들이 돈 되는 일을 찾지 이일은 하려고하는 사람도 없더라고”
한 꼬마 손님이 자신의 신발을 신었다. 조금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잘 걸어 다녔다. 완성이 되기 전, 한 번 신어보러 온 것이다. 완성되지도 않은 그 구두를 집에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봤다. 혹시나 그 꼬마의 행복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진/ 사진부

더하기 정보 -정형외과용 구두 건강보험 대상 2005년 4월부터 정형외과용 구두가 건강보험 대상이 됐다. 정부에서 정형외과용 구두를 정식으로 보장구로 인정하여 보험 급여를 환급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형외과용 구두 지급대상은 발에 기능장애가 있는 자(발에 변형이 없는 자는 제외)또는 다리길이의 차이가 있는 자로서 정형외과용 구두가 필 한 경우 내구연한 2년(만 18세 이하인 자는 내구연한 1년)이다. 지급기준을 보면 동일 보장구의 유형별로 내구연한 내(2년)에 1인당 1회에 한하여 기준액 이내로 보험 급여가 지급된다. 기준액 이내 구입시 실구입가의 80%, 기준액 초과 구입시 기준액의8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단이 부담하게 된다. 장애인은 기준액의 20% 및 초과금액을 부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