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성 환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주임

우리 생활 속에 인터넷이 자리 잡은 지는 겨우 10여년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콘텐츠의 디지털화와 만난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특히 정보의 이용형태에 있어서 인터넷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정보 이용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펌’이라 불리는 행위이다. 아마도 ‘퍼오다’, ‘퍼가다’에서 파생되었을 ‘펌’은 타인의 웹 문서 내용을 통째로 긁어와 다른 웹사이트에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이미 ‘펌’은 인터넷 세대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정보 이용 방식이 되었고 그러한 행위는 하등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1월 음반제작자 등 저작인접권자들에게 전송권이 부여되면서 한차례 소동이 일었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음악파일이나 영화파일의 불법공유는 물론이고 전혀 문제없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인터넷상의 신문기사나 웹사이트의 개인 글, 심지어 노래가사까지 권리자의 허락 없는 ‘펌’은 불법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펌’ 행위가 불법은 아니다. 그 전제조건은 ‘펌’의 대상이 저작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상의 정보들 대부분이 저작물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모든 ‘펌’ 행위가 불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다수 네티즌들은 그러한 정보의 ‘펌’ 행위가 전송권의 부여로 인해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는 측면이 있으나 실은 ‘펌’이라는 문화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그것은 불법이었다. 다만, ‘펌질’을 하는 이용자도 ‘펌질’의 대상이 되는 권리자도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저작권법에서는 공표된 저작물을 비영리로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또는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 이를 복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다. 이는 그와 같은 범위의 이용은 저작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크게 손상할 우려가 없고, 또 그것을 일일이 규제하여 권리자의 이용 허락을 얻게 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를 근거로 인터넷에서의 이용도 개인적인 이용인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물론 ‘펌’을 해간 사람이야 순수하게 개인적인 이용이 목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터넷의 속성이다.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라면 결국 ‘펌질’된 정보는 국민 모두와 공유하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 네티즌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으나, 그로 인해 ‘펌’ 행위가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펌’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펌’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티즌의 펌으로 인해 누군가 하루아침에 인터넷 스타로 떠오른다거나, 한 네티즌의 글이 여기저기 퍼지며 광화문 촛불시위와 같은 거대한 사회적 역동을 만들어 낸 일 등은 ‘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문화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은 그런 점에서 인터넷의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밤을 새워 고민한 나의 글과 연구 성과물이 버젓이 타인의 블로그에 마치 그 사람의 것 인양 올라가 있다면, 수십 컷의 필름을 버려가며 얻어낸 소중한 사진들이 아무렇게나 이 사람 저 사람의 블로그에 배경화면으로 쓰이고 있다면, 오랜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 만들어 낸 나의 콘텐츠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허락도 없이 공유되고 있다면, 누구도 이를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이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 역시 법이 정한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인터넷 이전의 세상을 기준으로 기초가 잡힌 현행 저작권 제도가 사이버 세상의 저작물 이용 상황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제도는 인터넷 시대에는 맞지 않으니 따를 필요가 없다고 무시하는 것이 진정한 정보의 자유이용 정신이라 할 수 있을까? 지킬 것은 지키면서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인터넷 시대에 조화롭게 맞추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 판단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는 우리가 어떻게 인터넷상의 새로운 저작물 이용문화에 대응하는가를 주시하고 있다. 이용자와 권리자 모두가 만족하는, 그래서 세계가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저작권 제도와 저작물 이용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