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한 나라의 문화를 살펴보려면 그 나라의 음식을 먼저 맛보라”는 말이 있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한국음식(이하 한식)의 세계화는 단순한 음식 홍보만이 아닌 자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잊혀 가던 전통주인 막걸리가 재발견된 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더욱이 반짝 인기가 아닌 이번 연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막걸리의 약진은 눈이 부시다.

떡, 단순한 음식이  아닌 조상들의 삶의 흔적

막걸리처럼 갑자기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사랑을 받는 한식이 있다. 바로 우리의 전통음식 ‘떡’이다. 예로부터 떡은 선조들의 경조사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중요한 음식이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떡, 그런 떡의 연구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곳이 바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종로구 와룡동)의 떡 박물관이다. 얼마 전에는 ‘피겨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미셸 콴이 떡 박물관을 미공보대사(국가 기관에서 국민에게 각종 활동 사항에 대하여 널리 알리는 외교관) 자격으로 방문하여 단순한 박물관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렸다.

떡 박물관의 전시실은 1관과 2관으로 나눠져 있다. 1관은 세시명절(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따른 때)마다 먹었던 떡과 떡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를 전시해 많은 사람들이 떡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떡 가짓수는 약 200여 개로 만드는 방법에 따라 찐 떡, 친 떡, 지진 떡, 삶은 떡으로 분류되어있다. 우리에게 친근한 무지개떡부터 알록달록한 원두막떡과 먹기 간편한 떡샌드까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모형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겼다. 1관의 한쪽에는 예전 부엌 모양을 본뜬 곳이 있었는데 종이에 한자가 거꾸로 써붙여 있어 관람객은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것은 부적의 일종으로(물[水]과 바다[海]를 뒤집은 채로 붙여 부엌에 불이 나더라도 금방 꺼지고 화재를 경고하는 의미) 그 당시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2관에는 일생동안의 중요한 의식마다 함께한 음식과 떡 재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일반적인 콩고물 재료부터 한약재까지 떡을 만드는 재료수가 엄청나 떡의 가짓수가 200여가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방문을 일찍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견학과 일본인들의 관광 등 취재할 동안 많은 이들이 떡 박물관을 찾아와서 떡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떡 박물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떡 카페 질시루였다. 현재 질시루에서 선보이는 메뉴는 멥쌀떡, 떡케익, 음료수 등 총 50여 종으로 방문하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방문하고 있는 외국인의 입맛도 사로잡고 있다. 또 6개월간 실온에 보존 가능한 레토르떡을 개발하고 각종 박람회에 출품해서 세계인들로부터 떡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뿌듯했다.

술도가에서 만든 전통주 박물관

전국에 술 박물관은 여러 곳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가진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에 위치한 배다리 술 박물관으로 사라져가는 전통 술의 맥을 잇고자 95년간 5대째 내려오는 술도가(술을 만들어 도매하는 집)가 직접 설립했다.

배다리 술 박물관은 1층의 노천카페와 2층의 전시실로 이뤄져있다. 이 중 배다리술도가의 노천카페는 5대까지 내려온 주조솜씨와 입소문으로 인해 술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층이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뒤로하고 올라가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술 배달하는 모습의 인형을 볼 수 있다. 지금처럼 차량으로 술을 운반하는 것이 아닌 옛날 방식으로 재현된 인형이었다. 군밤모자를 쓰고 자전거로 배달가는 모습은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할 정도로 익살스런 모습이었다.

인형을 지나치고 들어간 첫 번째 전시장은 술 제작과 유래, 역사 같은 관람객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전시했다. 들어서면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주세령(일본이 총독부의 수탈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술에 부과세를 만들어 시행한 법령) 공포 당시, 정종공장에서 썼던 정종사입통(정종을 담는 통)이었다. 크기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가 2미터로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야 겨우 안을 수 있었기에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밖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각종 술독, 항아리, 그릇, 술병 등을 전시해 우리나라 고유의 양조기술 발달상과 술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정종사입통 그 다음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잡는 것은 술 빚는 과정을 인형으로 재현한 것이다. 처음의 누룩딛기(술을 발효시키는 누룩을 밟아 번식을 도와주는 것) 부터 마지막 과정인 술 배달까지 섬세하게 재현된 인형들을 보다보면 마치 눈앞에서 바로 술을 만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두 번째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유신세대 혹은 386세대라면 잠시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배다리 술도가는 95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故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이었고 박물관에서는 그것을 인형으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골프를 치러 나왔다가 막걸리를 마시게 됐는데 그것이 배다리 술도가에서 만든 것이었고 이후 재임기간 동안 꾸준히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사랑받고 있는 한식,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식의 전통과 그것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뜻인 ‘고진감러란 말이 있는데 이와 같이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위상의 한식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한식들, 그 한식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찬구 기자 gcg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