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에 가격표가 사라졌다.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라면, 과자 등 많은 식료품에서 가격표가 사라져 버렸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오픈 프라이스(Open Price)’ 제도가 확대 시행됐기 때문이다. 오픈 프라이스는 해외에서 검증된 성공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1999년에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매출의 70%이상을 할인판매에 의존하던 화장품 업계의 병폐를 근절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지난 7월 1일을 기점으로 라면, 과자, 빙과류 등의 가공 식품을 포함한 총 247개의 제품이 추가되었다.

 오픈 프라이스는 제조업체가 제품 겉포장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자가 가격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권장 가격을 실제 판매가격보다 부풀려 표시한 뒤 팔거나, 자주 발생하는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이론)과 같은 폐단을 근절하기 위함이다.

 이를 시행함으로서 유통업체간의 경쟁을 촉진시켜 상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유통업체별 상품 가격의 차이를 알 수 있어 알뜰한 소비가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 가격에 초점을 두는 업체와 가격의 서비스에 집중하는 업체 간의 차별화도 분명해져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 상품가격 , 인상과 인하사이

 제도의 시행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이 사라짐에 따라 소비자의 가격 의존도가 감소되고, 결과적으로 상표명과 점포 이미지, 제품 성분 정보, 제품 보증, 광고비 등의 서비스에 의존하게 된다. 때문에 제조업체는 소비자들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제품의 개발과 다양화 연구에 힘을 쏟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자로 하여금 질 높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또 제조업체는 제품 가격이 바뀔 때마다 포장을 새로하거나 단위를 바꿀 필요가 없어져 비용감소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도입 취지와는 달리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장점은 미미하다.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품목(아이스크림, 빙과류, 과자, 라면 등 4개)에 해당되는 18개 상품의 6월 평균가격과 7월 평균가격을 분석한 결과 55.6%(10개)에 해당하는 상품의 가격이 인하되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가격 인하와 ‘1+1행사’ 등이 실시되어 아이스크림과 과자류의 가격이 상당히 인하되었으나, 나머지 44.4%(8개)의 상품, 특히 라면의 가격은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점포별 차이도 큰 편이다. 가격변동의 지역별 차이를 분석한 결과, 서울, 대구, 울산은 6월 대비하여 7월에 18개의 상품 중 절반이 넘는 10개(55.6%)의 상품이 가격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 광주(전남)는 17개 중 9개(52.9%)가 인하되었고, 성남·용인 지역은 18개 중 9개(50%), 대전, 부산은 8개(44.4%)의 상품 가격이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비자원에 조사된 자료는 대부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만 한정되어 있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 일부 상품에 대한 정보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정확한 가격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업소별 비교 판매가격 등의 효율적인 가격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 무늬만 오픈 프라이스?

 오픈 프라이스가 확대 시행 된 지 석 달 가까이 되었지만 판매자나 소비자 모두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소매점의 경우 150개 이상의 상품에 하나하나 가격을 책정해야 하지만 그에 대한 기준법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가격 결정권이 소매상인에게 있는 오픈 프라이스의 특성상 상점마다 가격이 다를 수 있다. 때문에 물건을 구매 할 때마다 일일이 가격을 물어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게 된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사라지면서 대형마트에서는 판매상품 가격이 더 저렴해진 반면 유통구조상 불리한 입장에 있는 소매점은 당연히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 대신 소매상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주로 물건을 사는 1~2인 가구의 생활비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우석(관경1) 학우는 “자취를 하면 주로 근처의 동네상점을 이용하게 된다”며 “하지만 제도가 시행된 이후 가게마다 다른 가격에 혼란스러운 점도 있고, 다른 곳보다 가격이 비싸면 구매를 머뭇거리게 된다”고 말했다. 또 안훈엽(경제4) 학우는 “라면이나 아이스크림에 가격이 사라진 것은 알고 있지만 자취를 하는데 필요한 생필품에도 오픈 프라이스제도가 적용됐는지도 몰랐다”며 “실질적인 시행과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한편 가격 책정에 ‘눈 가리고 아웅’ 격인 경우도 있다. 일부 소매점에서 K-800(800원), 2.3L(2300원) 식의 바코드 숫자로 가격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코드는 제조업체 자체에서 매겨지기 때문에, 결국 ‘권장소비자가격’이란 이름만 사라졌을 뿐 기존의 유통구조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오픈 프라이스가 문제시 되고 있는 곳은 비단 소매점 뿐 만이 아니다. 가격 거품이 많은 업종으로 꼽히는 패션업계·백화점업계는 오픈 프라이스의 사각지대다. 제조업체가 판매까지 장악하고 있는 판매 구조상, 제도 시행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 가격 정보도 ‘아는 것이 힘’

 말 많고 탈 많은 오픈 프라이스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제품을 구매할 때 충동구매를 자제하고 여러 곳의 가격을 비교해 보고 구매를 결정해야 한다. TV나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소비자원은 ‘T-Price 가격비교 사이트’ (http://price.tgate.or.kr)를 통해 소비자 정보 제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현재 T-Price에는 지역별 판매점의 판매가격안내부터 품목별 가격안내, 월별평균 가격정보, 단위가격 정보, 가격추세 정보 등을 공지하고 있다.

 한편 기업들도 소비자들에게 가격정보를 제공하기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쇼핑하우’를, SK텔레콤은 ‘바스켓’을 내놓았다. 또 올 하반기까지 G마켓-옥션이 공동으로 만든 종합 쇼핑 검색 포털 ‘어바웃’이 선을 보일 예정이고, 상품 정보 검색 분야에서 최고 점유율을 갖고 있는 네이버도 ‘지식 쇼핑’의 모바일 버전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스마트폰의 사용 증가에 발맞춘 어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스마트 폰용 쿠루쿠루(QrooQroo)와 에그몬(EggMon) 등이 그 예이다. 위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은 QR코드나 바코드에 대면 자동으로 가격과 리뷰 등 다양한 정보가 뜨도록 되어있어 소비자들의 현명한 소비를 도와주고 있다.
이에 이한주(경제학과) 교수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는 전반적인 점포의 담합을 억제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유도하는 것이다”라며 “가격에 대한 정보검색의 비용이 추가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이 발달했으므로 그 인하 효과를 잘 이용하고, 가격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판단해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다”라고 덧붙였다.

 오픈 프라이스의 본래 취지는 가격 경쟁을 유도해 가장 적정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잘못된 구매행동을 한다면 그 피해는 소비자들이 떠안게 된다. 정보력이 경쟁시대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은 더 이상 인터넷상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밥상에 오르는 식품과 매일 사용하는 생필품에 대한 가격정보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가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소비자 스스로 가격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지현 기자 p32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