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물을 선택하는데 표준으로 삼던 조건이 있다. 바로 신언서판이다.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을 뜻하는 이 말은 비단 예전의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신언서판’의 의미는 더욱 더 강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말씨와 문필을 뜻하는 언(言)과 서(書)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생각을 말과 글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충분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려 8년 동안 대통령의 손과 입이 되어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지내온 사람은 얼마나 말하기와 글쓰기의 달인일까. 최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좬대통령의 글쓰기좭(메디치미디어 刊)를 펴낸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을 만나 말하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운이 좋았다. 요즘 사람들은 한 가지 이유 정도로는 책을 잘 사지 않는다. 책을 사는 이유가 최소 2가지는 돼야 한다. 좬대통령의 글쓰기좭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글쓰기 방법을 알고자 하는 욕구, 이 두 가지 효용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지만 사후해설을 하자면 그렇다. 또 청와대 비서관의 생활을 에피소드로 재밌게 담은 것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연설문은 그야말로 말을 하기 위해 준비된 글이다. 그러니까 ‘말글’과 같이 써야 한다. 즉,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써야 한다. 연설문은 말하듯이 써야 하기 때문에 연설문으로 글쓰기 훈련을 하면 말하는 법(화술)도 같이 익힐 수 있다. 또, 어떤 사안을 두고 3분 스피치를 쓰는 훈련을 하면 어디 가서든 조리 있게 짧은 시간에 자기 얘기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인공포증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떠는 것뿐만 아니라 말도 못하고 발표도 못했다.

한번은 대학교 4학년 때 졸업논문 발표하는 강의가 있었는데 통과를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양주를 페트병에 가득 담아와 발표 직전에 화장실 가서 다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발표를 했다. 취해서 혀가 꼬이고 말도 잘 안 나왔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 습관을 제대로 고치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의 일 때문이다. 광복절 경축사를 어떻게 쓸 건지 발표를 하라고 했다.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었다. 발표안을 다 외웠다. 그리고 한번 성공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괜찮아졌다. 한번 도전할 때 완벽히 도전해 성공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재주가 없었다. 처음 대우증권에 입사했을 때, 대우증권 20년 사사를 쓰는 사람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쓰는 사람이 다른 사사를 계속 베껴서 내가 쓰게 됐다. 그 일이 없었으면 글과 무관하게 살았을 것이다. 글은 타고난 재능으로 쓰는 게 아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 즉, 글은 연습과 훈련으로 쓰는 거다. 열심히 쓰면 누구나 다 잘 쓸 수 있다. 그러니 글재주가 없다고 포기하지 마라.

 

 

 글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내용’과 ‘형식’의 문제다. ‘내 생각이 유치한 수준이고 잘못 됐다고 비난 하지 않을까’하는 내용의 문제와, ‘내용은 좋은데 글 솜씨가 안 좋다고 비난하지 않을까’하는 형식의 문제다. 하지만 두 가지 다 염려할 부분이 아니다.

생각이 없는 건 문제다. 하지만 생각에 옳고 틀림은 없다. 그러니 ‘내용’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감 있게 얘기하면 된다.

‘형식’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글을 보여줘라. 글은 기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독자가 있어야 한다. 보여줌으로써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그건 하나의 과정이다. 그걸 두려워하면 글이 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글을 공개해야 한다.

나도 매번 내 글에 대한 평가와 이목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좌절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글은 가능하면 공개적으로 쓰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또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글이 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베껴쓰기’를 하든 어떤 방법이 됐건 많이 써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어느 순간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물이 100℃에서 끓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100℃까지 가야한다. 거기에 해당하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것만 하면 누구나 터득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게 안 왔다면 아직 시간을 그만큼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쓸까, 첫줄을 어떻게 쓸까, 이런 고민은 다 해결할 수 있다. 글을 많이 써보면 이런 종류의 글에는 뭐가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안다. 쓰면서 시간을 들여야 터득이 된다. 터득을 하면 자신의 글에 뭐가 들어가야 할지 아니까 어떤 내용이든 다 쓸 수 있고 빨리 쓸 수 있다.

 

 헤밍웨이의 말이기도 한데 딱 한마디로 말하면 ‘더 뺄 것도 더 넣을 것도 없는 글’이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이 뺄 것도 빠질 것도 없는 글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 다 부족하다. 불필요한 것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독자에게 필요하지 않는 것이 많이 들어가 있으며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또 빠져 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뺄 게 없나 빠진 게 없나만 확인해도 기본은 한다.

 

 

 많이 생각해라. 많이 생각하면 자기 소신이 생긴다. 자기 소신이 생기면 그것이 결국 사회에 나가서도 승리하는 길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자기 기준이 분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기준이 없으면 자꾸 흔들리고, 남의 이목이나 잣대에 맞추게 되고, 그러다보면 불행해진다. 자기 생각과 입장이 분명하면 그게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대학생 때는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생각을 잘 하기 위해서는 독서, 토론, 학습, 관찰, 메모, 이 다섯 가지를 해야 한다. 독서는 남의 생각을 통해 내 생각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만들어진다.

 

 학습도 매우 중요하다. 학습은 강의실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시절은 친구들과 놀러도 많이 가고 얘기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모두 학습이고 관찰이다. 관찰은 관심이 중요하다. 사람,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면 생각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메모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 다 날아간다. 그러므로 생각이 나면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다섯 가지가 서로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발전하는 것이다.

 

황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