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의 ‘거주풍경’에 대한 지성학 특강이 지난달 30일 예음홀에서 있었다.  그는 15년간 한국 건축의 거장인 김수근 건축가에게 건축을 배웠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 DMZ 평화생명동산,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있다. 또 그가 쓴 책으로 『빈자의 미학』이 있다.

  건축은 인문학적 토대 위에 있다

  건축은 우리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건축을 많이 오해하고 있다. 가장 큰 오해가 건축을 단순한 부동산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또 예술과 기술의 일부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건축의 본질은 내부공간이다. 따라서 건축설계를 잘하려면 우리가 사는 방식을 알아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을 공부해야 한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회재 이언적의 집인 ‘홀로 즐기는 집’이라는 뜻의 ‘독락당’이 있다. ‘독락당’은 마당을 위한 집으로 공간끼리의 관계가 중요시된다. 반면 독락당과 같은 시기에 서양에서 지어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집은 단일 중심적 평면으로 자연을 지배해야할 대상으로 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지향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 건축, 가치관이 다르다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투시도법은 사물을 보는 방법으로 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그린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싫은 세계이다. 반대로 우리 선조가 그린 19세기 민화에 8칸의 책장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각 칸마다 자신의 중심이 따로 있다. 즉 세상에는 중심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중심이며 다원적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것이다.
21세기 건축의 화두는 ‘불확정적 비움’이다. 우리 옛집의 마당은 정해진 공간이 있는 게 아니며 끝난 뒤에는 고요하게 비워져서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불리는 종묘도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는 ‘월대’라고 불리는 마당의 폭발적 에너지가 건축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 미국 샌디에이고에 만든 소크 생물학연구소 또한 비워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변화를 보여준다.

  건축, 비울수록 아름답다

  영국 정치가였던 처칠은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비참한 꼴로 물러나는 것은 청와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청와대는 목조 전통 건축 형태를 콘크리트로 흉내낸 가짜이다. 허황된 공간이 허황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독재자 옆에는 항상 유능한 건축가가 있었다. 건축을 통해 민심을 조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잘 안 독재자가 히틀러다. 히틀러는 베를린 시 전체를 개조하는 게르마니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계획의 마지막 목표는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전당’을 짓는 것이다. 이 건축은 돔형 지붕에 열주가 받치는 형상으로, 돔은 하나의 세계를, 열주는 개성을 상실한 대중을 말하며, 시민들을 나치제국의 신민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이 건축의 목표였다. 다행히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과 물줄기 등이 있어 땅에 새겨진 무늬가 뚜렷하다. 땅에 새겨진 무늬 위에 다른 무늬를 덧대서 만드는 중첩된 무늬가 우리의 거주풍경이다. 좋은 건축가, 도시계획가는 어떤 건축물, 어떤 도시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땅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문이라는 뜻의  landscr ipt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내 건축의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건축과 모든 도시는 허물어진다.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기억만이 진실할 뿐이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가 어떤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야하는지 자명한다고 생각한다.

  건축가, 도시계획가가 돼야 한다
  특강을 들은 최기택(기계자동차3) 학우는 “건축가로서의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었고 나 또한 자동차를 설계할 때 신념을 가지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윤민수(건축2)학우는 “강의 내용 중 ‘땅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실제로 전공 프로젝트를 하면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소의 의미를 나름대로 추측해보는 편이지만 그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