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의 강성연, ‘손님은 왕이다’의 성현아, 드라마 ‘궁’의 심혜진.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영화에서 ‘요부’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요부는 요사스러운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또한 권선징악의 논리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타난 악녀를 비난의 밀실에 가두어 버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쁜 여자는 시청자를 사로잡고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서울1945’의 소유진은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버리고 일제시대 자작의 딸 역할을 맡아 악녀로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험에 몰아넣고, 결국 자기를 배신한 남자에게 처절하게 복수한다. 이에 시청자들은 “오만하고 악랄하지만 똑똑하고 능력있는 소유진이 좋다”는 평을 보내고 있다.


또한 ‘왕의 남자’에서 장녹수역할을 맡은 강성연은 왕을 손에 넣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성적인 매력을 앞세워 연산군을 치마폭에 싸고 돈다. 예전 같으면 ‘화냥녀’라며 손가락질을 받았을 테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매력적이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난 해 방송됐던 드라마 ‘루루공주’의 경우에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여자 주인공을 앞세웠다. 이전 같으면 그 모습을 부러워하는 여성시청자들의 반응이 게시판을 달궜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순종적인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고, 수동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에 거부감마저 든다”는 혹평을 들었다.
나쁜여자의 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쁜여자가 성공한다〉, 〈나쁜여자 Cool한 여자〉같은 매력적인 여성상을 ‘나쁜여자’에 맞춰 나쁜여자를 소개하고 있다. 나쁜여자가 성공한다의 저자 우테 에어하르트는 “착한여자는 하늘나라를 가지만, 나쁜여자는 어디든지 간다”며 성공하고 싶다면 나쁜여자가 될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나쁜여자 신드롬’을 일으킨 것일까. 박이랑(독문·2) 학우는 “그동안 여자는 착하고 조신해야 사랑받는다는 것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당당하고 매력적인 나쁜여자에게 대리만족을 느껴 그런 신드롬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성숙(한양대 국제학부)교수는 “요즘 사회가 치열해지면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여성의 적극성을 더욱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며 “이에 따라 적극적인 새로운 여성상으로서 ‘나쁜 여자’가 부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 ‘나쁜여자’들은 대체로 야망이 크고 목적의식이 분명하다.


야망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연기는 더욱 빛을 발하고 시청자와 관객을 매료시킨다. 또한 악랄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은 유교사상아래 묶여 있던 여성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연속인 현실이 계속 되는 한 당당하고 큰 야망을 가진 나쁜여자의 치맛바람은 멈추지 않을 듯하다.
 이정선 기자 thesibe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