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문제연구소 소장 김정운

새로운 것은 결코 못 만들어

기존에 있는 것을 편집하라

이 창의성 통해 새 상품 나와

세상은 다양하게 바라봐야

  지난 17일 예음홀에서 지성학 강의가 진행됐다. 강연자는 김정운 여러 가지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좬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좭, 좬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좭 등의 저자다. 김 소장은 이번 지성학 강의에서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과, 대학에서 학우들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최진기 수습기자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세상이 됐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에 남긴 명언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말 한마디로 현대 사회를 정확히 진단했다. 이 말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바로 ‘편집’이다. 스티브 잡스가 위대한 ‘창조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편집능력’ 덕분이다. 편집은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냄을 의미하는 창조는 ‘기존에 있던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 묘한 진실이 숨어 있다.

  여러분은 표절없이 창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스티브 잡스가 표절하지 않았다면 창조가 가능했을까. 남의 것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그 행위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로만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남의 것을 가져와서 자기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창조’다. 그런데 사실 창조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창조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냄을 의미하는 데, 이는 신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창조’보다는 ‘창의성’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네이버 지식인은 창의성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과연 새로운 것이 무엇일까. 새로운 것은 생전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하고 상상도 못해봤던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성’도 순식간에 모순이 된다. ‘새로운 것’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다.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 즉, 알지 못하는 것은 결코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떠오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창의성’이란 단어는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너무 익숙해서 있는지도 몰랐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 능력’이 ‘창의성’이다.

  흔히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창의적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해 21세기를 낯설게 느끼도록 할 것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21세기에 대해 진단해봐야 한다.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의 사회다. 인간은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면 그 자극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것이 ‘정보’다. 그리고 그런 ‘정보와 정보간의 관계’를 ‘지식’이라고 한다.

  지식과 정보의 사회인 21세기는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다. 따라서 원하는 정보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편집해 나만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정보와 지식은 권력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학우들은 뉴스를 어떻게 접하는가.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 5개의 헤드라인 기사가 뜬다. 혹시 이 5개의 헤드라인 기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짜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면 결코 창의적일 수 없고, 나아가 성공할 수 없다. 정보는 내 능력, 내 관심사에 맞게 소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 관심사에 맞게 소비하고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나만의 이야기, 즉, 남들이 못하는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나에게 권력이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 배워온 것은 독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이다. 독일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Alles in Ordung?(괜찮아요?)”인데, 이 말을 직역하면 “모든 게 잘 정리됐습니까?”라는 뜻이다. 독일 학생들은 학자의 책을 읽을 때 노트필기를 하지 않고 대신 카드를 만든다. 그 카드에는 간략하게 요약된 책의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한국학생들과 독일학생들의 결정적인 차이다. 똑같은 A학자의 책을 읽었다면 그 학자의 생각에 대해서는 독일학생보다 한국학생이 더 잘 설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학자의 생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에서는 한국학생이 독일학생을 결코 따라올 수 없다.

  독일학생들은 정보를 정리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각, 즉, 메타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에 능하다. 이 메타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창의성’이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편집’에 있어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그림의 평가가 달라지듯 시선의 방향에 따라 세상이 전혀 다르게 편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이 시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을 ‘입체적으로 공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편집할 수 있으면 세상이 재밌어진다.

  취업을 위한 훈련소로 변모해버린 대학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대학은 본래 그런 목적으로 설립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재밌기 위해 다니는 것이다. 대학을 의미하는 ‘School’은 ‘삶을 여유롭게 보내는 방식’이라는 의미를 지닌 ‘Scholar’에서 기원한 단어다.

  재미는 세상을 내 관심에 따라 편집하는 원동력이다. 빗자루를 보면 무엇을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빗자루를 보면 쓸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그걸 타고 노는 생각을 한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라는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사는 게 재밌는 사람은 낯선 정보를 귀신같이 잡아낸다. 사는 게 재밌는 사람만이 창의적일 수 있다. 부디 이 대학이라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재밌어 하고,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갖는가를 찾아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