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스스로 주체가 되기 위한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성인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 타자화 하는 시선을 거부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후략)

지난 10일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7층 10701호. 80여 명의 사람들이 배은경(서울대 사회학과)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한·독문화연구소가 2000년부터 7년째 시행해 온 ‘중앙게르마니아’. 대학사회에서 인문학이 쓸모없는 ‘잉여학문’으로 평가받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 학문의 본령과 대결함으로써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열린 토론회이다.

학생들에게 인문학에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적 자극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의 학문적 풍토를 복원해가자는 것이 ‘중앙게르마니아’의 목표라고 한다.

지난 해부터 강연을 들어왔다는 윤지혜(한신대·문예창작) 씨는 “인문학의 위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나 자신은 인문학을 탈피시키기 보다는 많이 보고 습득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윤지혜 씨는 ‘중앙게르마니아’ 말고도 여러 인문학 강의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금요일에 격주로 열리는 콜로키엄에는 평균 7~80명의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인문학을 깊이 있게 다루고 싶어 하는 중앙대학교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를 비롯해 문화연구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강연 후에는 끝이 날 때까지 이어지는 토론이 기다리고 있다. 참석자 중 한·독문화연구소에 조교로 있는 조일희(중앙대·독문과) 씨는 “처음에는 이 콜로키엄도 작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전공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이 현상은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바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날 강연은 보브와르의 ‘제 2의 性’에 대해 ‘What is a Woman?’ 의 부제를 달고 보브와르의 여성학과 실존주의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강연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배포된 강연 자료와 노트를 꺼내놓고 강연을 들으며 연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 강연은 책의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으로 정해진 책을 읽고 오지 않으면 강연의 내용 이해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강의가 끝나고 10분간의 휴식 후 토론에 들어갔을 때 인원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 하지만 신입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은 내용이 어렵다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토론은 사회자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사회자가 토론 시작을 알리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후 강연자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성은 여성적인 것으로 남성을 대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성 해방은 남성을 이기려고 벌이는 운동이 아닙니다. 왜 굳이 여성·남성으로 나눠야 합니까, 이것은 모든 차이보다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본질적 사고를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질문자와 답변하는 강연자를 차례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하나 틀렸다고 할 수 없는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1시간정도 진행된 후에 더 이상 질문자가 없자 힘찬 박수와 함께 이 날의 강연은 끝이 났다.

이 사회에서 인문학은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날 강연에서 발견 할 수 있었다. 강연을 한 배은경 교수는 “인문학의 존립 이유는 삶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차차 사회적으로 수요가 많아져 오늘 강연처럼 대중적인 장소를 빌어 쉽게 인문학을 접해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대학이 제 기능을 못해서 그렇다”며 당장 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인문학은 대학생 때 꼭 심도있게 접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