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글을 읽고 쓸 때만
자신을 알고 바꿀 수 있어
SNS 말고 비밀일기 써봐라

  이야기를 짓는 동안 ‘나’는 한 세계의 창조자이고 주인이 될 수 있다.” 지난달 31일 예술대학2 100호에서 ‘영상시대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김영하 작가의 강의가 진행됐다. 김 작가는 “글을 쓰는 습관은 가상이든 일기든 이 세기에 길고 어려운 싸움에서 나를 지켜주는 힘이고 무기”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나’를 인식하며 내면의 감정을 직시하고 내면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보자.

김영하는 누구인가
  소설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당신의 나무>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는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로 제9회 김유정문학상도 받았다. 신세대의 도시적 감수성을 냉정한 시선과 메마른 감성으로 묘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나를 바꾸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는데 세상은 그냥 바꾸라고만 한다. 자기들에게 쓸모 있는, 자기들이 잘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개개인은 내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내면은 남이 바꾸란다고 쉽게 바꿀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를 주제로 ‘나’, ‘바꾸다’, ‘글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 세 가지 중 무엇도 간단하지 않다.
  우선 ‘나’를 바꾸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나’죠”,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할 때 ‘나’다. 이러한 대답을 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굉장히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고, 나는 내가 누군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느낀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사실 인간은 평소에 나란 존재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볼 일이 없다.
  ‘나’는 세계의 중심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게 돼 있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남으로써 세상이 시작됐고 동시에 ‘나’가 죽음으로써 세상이 끝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기자들은 질문을 하며 작가인 ‘나’에게 “나는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고 그렇기에 직업을 글쓰기로 선택했다”라는 결론을 듣길 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밤을 새워 만화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등 당시 ‘나’ 자신이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얼떨결에 어떤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알지 못한다.
  자기 결정은 삶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것에 있어 중요하다.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다. 최근 <자기 결정: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라는 책을 쓴 철학자이자 소설가 페터 비에리를 소개한다. 그는 ‘내’가 누군지, 어떤 것을 아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자기 인식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그는 ‘내가 결정하는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기본적으로 독서, ‘읽기’와 함께 시작하며,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결국 ‘쓰기’를 통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인식을 실천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중 첫째는 ‘읽기’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한 공감능력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폭넓은 가능성 안에서 여러 가지 입장을 바꿔보는 정신적 활동을 함으로써 현실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삶의 가능성을 모두 시험해 볼 수는 없지만, 소설의 등장인물에 나를 대입해 봄으로써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검토해 볼 수 있다.
  또한 문학 작품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자기소개서에 서사적 구조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자기 인생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표현해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자기 삶을 드라마적 전개로 풀어내는 것이고 시련을 통해 진짜 자아를 드러낼 수 있다.
  패터 비에리가 제시한 자기 인식을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쓰기이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즉, 글을 쓰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군지 잘 알아 단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언어적인 표현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순간 결정하는 것이다. 같은 글 속에서도 한두 단어의 변화로 장르 자체가 바뀔 수 있다. 글을 쓰는 모든 것에 우리의 내면이 투영된다. 각 문장 안에는 아주 많은 결정들이 숨어 있고, 어떠한 사건을 선택하고 반응하느냐를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의 내면도 짐작할 수 있다.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차분하고 명확하게 마음속에만 있는 그 사건에 대해 자기 마음속에 실제하는 감정을 외화함으로써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언어화 되지 않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문법에 맞는 언어로 서술해가는 과정에서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난다.
  나를 ‘바꾸다’라는 것은 먼저 나를 인식한다는 것이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고 글을 써야 되고, 그렇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내 감정에 주인이 되기 때문에 내면이 강해진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도우면서 그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더 강한사람, 더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우리를 변화하기를 돕는다. 앞으로 중요한 과제는 자기 내면을 강화하고 지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고,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은 남이 함부로 휘두를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란 어떤 글을 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를 써 볼 것을 권한다. 자기감정의 모든 것들을 가감 없이 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블로그와 SNS에 글을 쓴다. 잘못하면 퍼져나가서 지탄을 받거나 왕따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자기 검열이 생길 경우 정직한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러니 비밀 블로그나 일기장 같은 것이 좋겠다.
  글을 쓰며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는 지금 살고 있는 영악한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된다. 정신적인 근육이 있다면 그 근육이 강해지는 것이고 세상풍파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