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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의 변
김한비,박현정 기자  |  gc5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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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9  0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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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를 배운 3년
 

   
 

1학년 때 급하게 작성한 지원서 한 장을 문 밑으로 밀어 넣던 기억이 난다. 벌써 3년이 지나 이제 신문사를 떠나려 한다. 동기들과 퇴임한 선배님, 교수님, 간사님, 고문님과 함께했던 것을 되돌아보면 그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아쉽기만 하다. 1학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문사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바빴고 2학년 때는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3학년 때는 동기, 후배들과 열두 번의 신문을 내고 보도사진전을 끝내고 나니 한 해가 지나갔다. 지금은 힘들었던 때나 순간순간의 기억이 나기보다는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시원섭섭하다.
  나와 같이 신문을 만들어 간 선배들은 동기 없이 신문사를 이끌어 나갔다. 반면 나는 3명의 동기들과 올해를 시작해 2명의 동기들과 신문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동기가 있어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꼭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동기들 덕분에 신문사 일을 편하고 수월하게 할 수 있었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신문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지만 의견 대립으로 다투던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 국장을 맡은 직후 동기들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때때로 개성이 강한 기자들과 부딪혀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가벼운 마음으로 퇴임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아무 걱정 없이 신문사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동기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다.
  후배들도 빼놓을 수 없다. 후배들을 보면 퇴임한 선배가 나를 볼 때 나처럼 이렇게 불안해하며 걱정했을까 생각한다. 아직 미숙하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두고 가야 하나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도 이렇게 1년을 보냈듯 후배들도 각자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며 신문사의 1년을 알차게 꾸려나갈 것이다. 내가 2학년일 때부터 나를 봐온 후배들은 국장이 된 나를 보며 도와주고 믿고 따라와 줬고 새로 들어온 일학년들은 “선배, 선배”하며 힘든 일에도 밝게 웃으며 일해 줘 고맙다.
  1년 중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보도사진전이다. 보도사진전은 1년 중 신문사의 가장 큰 행사로 한 해간 찍은 사진을 선별해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열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사진 선별부터 이벤트 기획, 상품 준비, 포스터 제작 등 머리를 맞대고 긴 시간 회의를 해야 했고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다. 걱정 가득했던 보도사진전은 후배들 덕분에 잘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 탓에 행사 진행이 어려웠고 마지막 날 추첨은 비를 맞으며 진행했다. 그렇지만 비가 와서 더 열심히 움직였고 그 와중에도 학우들이 행사에 참여해 줘 더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니 신문사에서 일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사람 간의 관계였다.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니었고 동기, 후배들을 대하는 방법이 달랐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직접 경험하며 느낄 수 있었다. 4년의 대학 생활 중 3년을 신문사에서 보내며 바쁘지만 알차게 보내 신문사에서의 3년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가 퇴임하며 이런 기사를 썼다. ‘후배들아, 너는 꽃이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의 구절을 이용한 것으로 신문사에 잘 어울려 가끔 떠오른다. 이제 후배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나’를 넘어 ‘우리’를 만든 3년

   
 

  대학생활의 터닝포인트, 의미 없이 반복되는 대학생활에 공허를 떨쳐내기 위해 변화만을 바라보고 들어온 그때 학보사 기자로의 도전은 3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성공적이었음을 자부한다. 나의 대학생활은 학보사를 들어오기 전과 후로 분명히 구분된다. 대학교에 들어온 직후의 나는 대학이라는 첫걸음에 기대에 부푼 신입생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학보사에 들어와서 2년 뒤 한 조직의 장으로서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갈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
  학보사에 들어와 학교 내외에서 일어나는 행사를 취재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학교의 리더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그중에서 1학년의 내가 학보사의 수습기자가 되어 간 첫 취재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소래포구에서 진행되는 간호학과 ‘어르신 건강지킴이’라는 봉사동아리 회장 인터뷰였다. 이것을 500호 특집호에 수습기자 에피소드로 펴낸 것이 내가 쓴 첫 기사다. 당시 에피소드나 다이어리 쓰듯이 편하게 써보라는 선배의 말에 수습기자의 포부를 담은 의지의 말끝마다 온갖 이모티콘을 붙여 온 그때의 나는 보기에 얼마나 난해했던 후배였을까. 그렇지만 그 뒤에도 학교 곳곳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자로서의 기질을 찾고 점차 정기자의 위치에서 역할에 임하게 됐다.
  학보사 기자로서의 취재 경험들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눈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센스를 알게 해줬다.
  학보사는 하나의 사회다. 이 말을 1학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의 나는 이 말을 매우 실감한다. 2주마다 신문을 발행하는 업무를 하는 자치기구지만, 그 안에 직급이 존재하며 부여받은 업무에 대한 책임이 분명 존재한다. 그 책임감과 학교 내 자치기구에서 활동하는 기자로서의 자부심은 앞으로 학보사를 이어갈 기자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한창 배움으로 즐거워하던 나에게도 학보사에서 나의 역할에 대한 불확신으로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인지 물었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 옆에는 묵묵히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감을 갖을 수 있도록 함께해준 든든한 선배들이 있었다. 나는 기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성의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학보사에 남아 나의 책임을 다할 수 있던 것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이 후배를 믿어주고 생각해주는 선배들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지해주는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간 선·후배들과 함께 나눈 희로애락의 시간들, 학보사가 아니었다면 경험하고 느낄 수 없었을 시간에 감사하며, 그 속에서 지금의 나는 ‘나’라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나의 기대에 부응하고 확신할 수 있는 ‘나’에 훨씬 가까워져 있다.
  나는 퇴임하지만 앞으로 이어갈 후배들에게 학보사 활동을 하며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 그 이상의 것을 얻어가고 전해주길 바란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강심을 갖고 나아가길 바란다. 나도 언제나 학보사의 선배로 이 자리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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