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인공지능의 우수성과 실현 가능성이 증명되면서 세계는 변화를 인지했다. 일반적인 생각들이 깨지고 있고 매일 새로운 지식들과 정보들로 넘쳐난다. 이 모든 상황은 정치, 경제, 사회 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인 변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도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세금 없는 나라가 가능할까? 학력, 재산, 경력 등이 필요 없는 사회가 있을까? 여기 중앙 관료기구 없이 작동하는 국가가 있다. 국적 없는 사람들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고 가족, 공동체, 국가, 사회, 대사관을 만든다. 사이버 국가인 비트네이션(bitnation)에 대해 알아보자.

 비트네이션은 수잔 타르코프스키 템펠호프와 릭 팔크빙에 등이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2014년 설립한 가상 국가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데이터 관리 기술이다. 기존의 데이터베이스가 중앙 서버에서 거래 장부를 독점적으로 보존·관리했다면, 블록체인은 참여하는 모든 컴퓨터에 똑같은 장부를 분산하고 저장한다. 참여자가 모두 같은 기록을 가지고 있어 조작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앙관리자 없이도 투명한 관리가 가능하다. 블록체인의 분산형 구조는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하다.
 비트네이션의 국적 취득 방법은 간단하다. 이름과 주소, 전자우편만 있으면 된다. 특별한 검증 없이 클릭 몇 번으로 국적을 얻을 수 있다.

자치권 보장, 자발적 공간
 비트네이션은 국경이 없다. 시민이 어디에 있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최고 정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비트네이션은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수백만 명이 쓰는 이 분산 장부는 개인 대 개인(P2P) 자치권을 보장한다. 또한 자발적이다. 사람들이 완전히 새로운 정부 시스템을 스스로 개발하고 만드는 플랫폼이다.
 비트네이션에는 법이 따로 없다. 개인 간 약속과 문서를 블록체인에 올려 공증받는다. 현재는 중단됐지만 보안 컨설팅과 드론 등을 통해 지구상 어디에나 찾아가는 개인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마스터카드와 제휴해 은행 직불카드처럼 쓸 수 있는 비트코인 카드를 판매한다. 누구나 공유해 쓸 수 있는 ‘대사관’이 각지에 있다. 난민 긴급 신분증 발급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칠레 교육기업 ‘엑소스피어’와 제휴해 창업 기술 등을 교육한다. 현재는 방문 교육만 가능하다. 디지털 화폐를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인 기본 소득 실현을 구상 중이다.
 비트네이션에선 가족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결혼 사실을 등록하기 위해선 비트네이션 신분증을 이용해 결혼증명서가 담긴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해당 블록이 모든 참가자들 컴퓨터에 보내진다. 그리고 모든 컴퓨터가 검증·인증하면 블록이 등록된다. 블록은 순서대로 사슬로 쌓이기 때문에 조작이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영구 기록으로 결혼증명서가 비트네이션에 등록된다.

공해상 미래 국가 건설
 여기까지 들어보면 국토 없는 나라다. 그러나 사이버 세상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 국가를 직접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집단이 ‘시스테딩 인스티튜트(The Seasteading Institute)’이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을 보면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밖은 어떤 국가의 권한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약 370㎞의 공간, 전체 바다 68% 중 60%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말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의 손자이자 구글의 기술자였던 패트리 프리드먼은 어떤 국가의 권한도 미치지 않는 해양에 개인별로 가로·세로 50㎝ 모듈 형태의 거주 구역을 띄우고, 이를 결합해 국가를 만들 목적으로 시스테딩 인스티튜드라는 기업을 2008년 설립했다. 이들은 올해 첫 시스테드를 바다에 띄울 계획이다. 미래 구강은 공해상에 다양한 모듈 집합체가 만들어지면, 각자 국가 시스템을 내걸어 경쟁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찾아 자신의 모듈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가장 좋은 국가만 생존하리라는 것이다.

미래엔 4~5개 나라에 속할 것
 비트네이션은 세계 곳곳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대사들이 자신의 집, 사무실을 공유하겠다고 등록해 놓으면 누구나 찾아가서 쓰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대사관이다. 한국의 유일한 대사관인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는 “온라인 국가는 오프라인 국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할 것”이라며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비트네이션을 시작으로 여러 비슷한 국가들이 생겨나고 미래엔 한 사람이 4~5개 나라에 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존 국가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2015년 세계 비즈니스 리더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년 뒤 블록체인으로 세금을 걷는 첫 정부가 등장하리라고 답한 사람이 73%에 달했다. 디지털 기술은 인터넷부터 웹 2.0, 사물인터넷까지 중앙집중형 구조를 깨뜨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고, 사회도 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겉으론 문제 없어 보이는 다른 나라들도 긴장을 해야 할지 모른다. 국민이 안방에 앉아서 언제든 국적을 갈아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