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연기예술학과 교수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이순재 석좌교수가 지난달 10일 제27회 이해랑연극상 시상식에서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해랑연극상은 이해랑 선생의 리얼리즘 연극 정신을 이어가는 연극상이다. 이 교수는 이해랑 선생에 대해 “진로에 대한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 직접 연기를 지도해주고 연기자의 길을 터준 분”이라며 “이 상은 선생을 영원히 기억하는 선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1956년 무대에 올라 61년째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나봤다.

‘사랑해요 당신’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연극 ‘사랑해요 당신’의 주된 소재는 ‘치매’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치매는 가장 가까이 있는 병이다. 대사를 외워야 하는 우리 같은 배우들은 치매가 오면 끝이라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연극은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자문과 제작비를 지원하며 만들어졌다. 가천대 이재성 교수가 연출을 맡고 많은 학생들과 동문들이 연극 제작에 참여하면서 함께 했다.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연기’를 비하하는 풍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명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며 연기의 예술성을 발견했다. 특히 한국에 들어왔던 영화 중에는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많았다. 그럼에도 연출력이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가 이룩해 온 전통적인 가치와 전쟁 후를 이끌어가는 젊은 세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을 보며 연기도 예술로서의 가치가 풍부하고 연기하는 사람도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배우들을 위한 기반이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꿈을 이어갔나
  당시에는 연기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작품을 제작했다. 주어진 대본을 같이 연구하고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며 역할을 분석해보고 토론을 통해 작품을 깨우치고 완성시켜 갔다. 또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따라해 보기도 하고 일본이나 미국의 잡지를 통해 연기에 대한 이론과 기본 조건들을 스스로 터득해갔다. 그때의 노력들이 모여 배우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는 지금을 낳은 것 같다.

학생들을 교육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가 무엇인가
  연기는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연기의 기본 조건은 화술, 행동, 표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은 화술이다. 연기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관객의 출신·연령에 상관없이 배우가 전달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서 배우가 구사하는 언어는 특별한 전제가 없는 한 표준어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배우는 누구나 자기 나라의 말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나 후배들을 가르칠 때도 스피치 훈련에 큰 비중을 둔다. 언어 표현이 능숙해지면 행동과 표정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또 연기는 이론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실전을 통해 연습해야 한다. 한 작품, 한 장면, 한 동작을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이는 비단 학생들이나 아마추어들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프로들에게도 요구되는 자세다.

한국 연극계의 발전방안은
  과거에 비해 연극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연극인들이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조적으로 연극 자체가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연극인들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도록 예산을 늘리거나 기업이 문화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방법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평균에서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연극 무대로 뛰어든 배우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힘든 위치에 있다.
  결국 연극의 길에 나선 배우들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통해 인정받아야 한다. 배우들의 유일한 자격증은 ‘실력’이다. 최근에는 연극 무대에서 인정을 받으면 TV, 영화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렸다. 스스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공론화됐던 블랙리스트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블랙리스트는 과거부터 내려온 악습이다. 다만 이번 정권에서는 이를 구체화해서 실질적인 명단을 만든 것이 문제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 작품 안에 담긴 사상과 이념은 기준이 될 수 없다. 핵심적인 기준은 그 작품의 예술성이다.
  하지만 예술가들 또한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한 나라의 잘못을 꼬집을 수는 있지만 한 나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주관을 가지고 활동을 하되 대한민국 자체를 향한 맹목적인 비판은 예술인들이 지양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한마디
  과감하게 기성세대를 뛰어넘어라. 이념 대립, 적대적 지역감정 등 뿌리 깊은 악습들을 뽑아내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을 보면 훌륭한 자질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을 경쟁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