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0일
새벽 5시. 자명종 소리와 함께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하는 건 오늘 스케줄 점검. 사업체의 사장이나 연예인처럼 대단한 스케줄은 없지만 단 한 시간이라도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매일 일정을 점검한다.

남은 잠을 깨기 위해 면도와 세수를 했다. 피부에 좋다고 여동생이 사 놓은 클렌징이 보였다. 하도 좋다고 해서 써 봤는데 거품이 너무 많이 나서 헹구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쓰기편한 비누가 좋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가던 중 지난번에 형준이가 선물로 준 로션이 눈에 띄었다. 화장품 사는 데에는 십원짜리 하나 아까워하는 나를 위해 선물해 준 건데 느끼하고 냄새도 별로다. 선물해준 건 고맙지만 다시 돌려줘야겠다. 찝찝한 기분으로 아침밥을 먹던 나는 결국 세수를 다시 하고 나서야 제대로 세수를 한 느낌을 받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내가 도착한 곳은 10개월째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 처음에는 친구 다섯 명과 함께 다녔는데 새벽에 나오는 게 힘들다고 다 그만두고 나만 남았다. 끈기 없는 녀석들, 그 친구들에게 그렇게 끈기가 없어서 어디에 써먹냐고 핀잔을 줬던 게 생각이 났다. 하지만 함께하는 친구가 없어도 하루 다니면 아무리 피곤해도 영어학원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

영어학원이 끝나면 학교까지 걸어간다. 학원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 오늘 배운 영어를 중얼거리며 걷다보면 어느 새 학교에 도착한다. 아침바람이 상쾌하고 밤새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이 좋다.

오전 수업 밖에 없는 오늘, 형준이가 옷을 사러 같이 가자고 한다. 과제가 있지만 급한 것도 아니고 좋은 날씨에 바람 쐬러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따라갔다.
형준이와 함께 도착한 곳은 도심의 한 쇼핑몰, 우리는 캐주얼을 파는 3층으로 올라갔다. 판매점이 보이자 쏜살같이 올라가는 형준이는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이거 어때? 아니다. 이게 더 낫나?” 형준이가 양 손에 바리바리 옷가지를 들고 와서는 번갈아 가며 들어 보인다. 형준이랑 옷 사러 여러 번 왔지만 형준이는 항상 저렇게 묻고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됐어. 아무거나 입어. 네가 여자냐? 뭐 그렇게 까탈스러워” 이렇게 말이다.
나의 핀잔에 무안했는지 매장 직원에게 쪼르르 가서 묻는다. 1시간 정도 돌고 나서야 형준이는 티셔츠 두벌을 골랐다.

 

형준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화장품부터 옷까지 외모 가꾸기에 바쁜 형준이를 보며 저렇게 시간을 보내면 내실은 언제 갖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멋진 옷을 입고 깨끗하게 피부를 가꿔도 실속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며 영어공부를 끝으로 나의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