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시끄러워진 중동, 사우디-이란 싸움 왜헤즈볼라, 사우디·이란 갈등 중심으로 부상 트럼프 힘입은 사우디, 이란 견제 본격화 이란도 미사일 ‘세질’ 공개하며 맞대응
최진기 기자  |  gc599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1.21  22:16:2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중동이 다시 위험한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다. 중동의 핵심 세력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역패권·종교 등을 놓고 지속적으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시리아, 예멘에 이어 최근 레바논에서 양국은 서로를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다. 1970년대부터 원유·종교 등을 이유로 반복됐던 양국의 갈등을 살펴봤다.

 

   
이란 시아파 교도들이 사우디 정부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이미 중동 곳곳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이란과 사우디가 최근 레바논에서도 갈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일 사우디를 방문 중이던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그는 “레바논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정치적 통제로 고통받고 있다”며 이란과 헤즈볼라의 압력을 비판했다.
 하리리 총리의 사임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향해 예멘에서 탄도미사일이 발사됐다. 사우디 군이 격추시켜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이 도시에 떨어졌다면 전면전까지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사우디연합군은 즉각 예멘의 수도 사나에 보복공격을 단행했다. 사우디 국영 아랍뉴스는 “헤즈볼라와 이란의 협박에 저항해 하리리가 사퇴한 날 공격이 이뤄진 것은 이란의 불만의 신호”라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1980년대 레바논 남부를 점령한 이스라엘에 저항하기 위해 꾸려진 시아파 무장정파다.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지원으로 세력을 키운 헤즈볼라는 강력한 친이란 세력이다. 최근 들어 헤즈볼라가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면서 이에 따른 우려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란과 사우디 간의 갈등에서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사우디 측은 헤즈볼라가 지역의 군사적 역할을 포기하기를 바라고 있다. 사우디 관리들은 최근 레바논 정부에 대해 만약 헤즈볼라의 정치, 군사적 역할을 계속 허용할 경우 사우디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는 경고를 남겼다. 
 
◆세력 커지는 이란 vs 견제하는 사우디·미국
 사우디의 새 리더 빈살만은 부패 척결을 이유로 왕자와 기업인, 고위관료 등을 대거 숙청하며 권력을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특권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국내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렇게 국내적으로 입지를 다진 빈살만은 대 이란 강경 노선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그는 친이란 성향을 보이던 카타르와의 단교를 주도했다.
 또 그동안 빈살만에 힘을 실어주며 이란 견제에 동참해온 미국이 향후 중동정책에서 취하는 태도도 주요 변수다. 트럼프 집권 전까지는 미국은 사우디와 이란의 긴장 고조를 불안해하고 사우디 정부의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억제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은 이란에게 대놓고 적대적으로 굴고 시아파를 통제하려는 사우디 측을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견제에 맞서 이란도 날을 세우고 있다. 하리리 총리의 사임 발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5일 이란은 하리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테헤란의 옛 주이란 미국대사관 앞에서 중거리 지대미사일 ‘세질’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사거리 2000㎞에 이르는 이 미사일을 반미항쟁의 상징인 ‘미대사관 인질 사태’ 38주년에 맞춰 선보인 것이다. 이날 테헤란에서는 “미국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가 울려 퍼지고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불태워졌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사우디·이란의 '중동맥주' 향한 갈등의 역사
 632년,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죽자 혼란에 빠진 무함마드 추종자들은 협의에 의해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아부 바크르를 칼리파(지도자)로 선출했다. 세습이 아닌 합의에 의해 지도자를 선호하는 ‘칼리프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4대 칼리파 알리는 3대 칼리파였던 오스만을 살인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에 따라 이슬람교는 알리의 칼리파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수니파와 알리만을 무함마드의 정식 후계자로 보는 시아파로 갈리게 된다. 그때부터 시작된 두 종파 간의 갈등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패권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가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지만 양국의 다툼은 종파와 원유 그리고 역내 패권 등 다양한 형태로 수십 년간 이어졌다.
 
◆원유 종파 대립으로 물든 1970·80년대
 1973년 10월,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발발하자 리비아, 이라크, 이란 등 아랍의 주요 산유국들은 석유자원의 국유화를 발표했고 이로 인해 원유가격은 순식간에 4배 이상 상승했다. 또 미국 같은 이스라엘 지원국에는 석유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는 지나친 인상은 피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란은 산업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유가가 더 인상돼야 한다고 맞섰다. 
 1980년엔 이라크와 이란 사이에 산적해 있던 영토 및 정치 분쟁이 폭발했다. 9월 22일 이라크 군대가 이란의 서부지역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8년간 지속된 이 전쟁에서 사우디는 재정적으로 이라크를 지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7년 7월에는 이슬람교 제1의 성지인 메카에서 사우디 군인들이 이란 순례자들의 반미 시위를 탄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이란인 275명을 포함해 400여 명이 숨졌다. 순례자 집단 사망에 테헤란의 시위대는 사우디대사관을 점거했고 사우디 외교관 한 명이 대사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결국 1988년 4월 사우디와 이란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관계 회복은 잠시, 시리아·예맨에서 다시 충돌
 1997년 5월,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가 이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관계 개선의 기운이 감돌았다. 1999년 5월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를 방문했다.
 오랜 반목의 역사가 끝나는 듯 보였지만 양국은 2012년 시리아 내전에서 다시 대립각을 세웠다. 이란은 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수니파 반군과 싸울 수 있도록 병력과 자금을 지원했다. 반면 사우디는 반군을 지원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예멘 내전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2015년 3월 사우디는 이집트, 모로코와 함께 예멘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수니 아랍 연합군을 꾸렸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이듬해 1월에는 사우디에서 저명한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가 처형되면서 이란과 이라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란에 있는 사우디 외교사절단은 시위대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사우디는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
1
문화산책
2
내 삶의 색깔을 찾아서… 북카페를 소개합니다
3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 초대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65 가천대학교 가천대신문사 | TEL 031-750-5994 | FAX 031-750-5984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정빈
Copyright © 가천대신문. All rights reserved.